본문 바로가기

Travel/Turkey

불청객


터미널 해프닝 

딱히 막히는 것 없이 착착 잘 진행된다 싶을 때 불청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평온하고 여유로운 셋째날을 마치고 저녁도 맛있게 먹고 버스에서 먹을 간식거리까지 챙겨 버스터미널에 일찌감치 도착할 때 쯤 불상사가 일어났다. 

저녁에 도시를 떠나야 했던 우리는 12시에 체크아웃을 하면서 짐은 자신이 6시까지 터미널에 갖다놓겠다는 호텔주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그 호텔주인은 우리가 탈 고속버스 매표소 사람과 친분이 있어보이기도 했고, 그동안 그래도 별탈없이 서비스를 제공해주었으니 괜찮을 성 싶었다. 

마지막날 우리가족은 낮에는 하루종일 조그마한 윌귑시내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두시간여마다 터미널에 들러 짐이 도착했는지 확인했는데,
2시에도 4시에도 짐은 오지 않았지만 6시에 맞춰올 수도 있으니 그래도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 윌귑 시내를 둘러보던 아직은 평화롭던 한 때.


그런데 6시가 넘어 출발 30분이 채 남지 않았는데도 도착하기로 했던 호텔 주인이 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하여,
호텔주인의 친구라며 여기서 버스표 끊으라고 과장된 몸짓으로 악수를 청했던 버스회사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구했는데 , 갑자기 그의 표정이 싹 돌변했다.

I don't know him. It's your problem.


헉.
헐레벌떡 방금전에 밥을 먹은 식당으로 뛰어가 앞뒤설명도 없이 우리가 묵었던 호텔로 전화를 부탁했다.
때마침 호텔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소규모의 카파도키아 호텔은, 일반적으론 말도 안되지만 전화를 안받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국의 여행사, 그리고 현지 사무소에도 전화를 걸어서
급하게 우리가 묵은 호텔의 주인 전화번호를 알아달라고 했다.

▲ 밥도 맛있고, 전화도 해준 친절한 레스토랑 ㅜㅜ

 


6시 40분, 버스가 도착했다. 아까 그 터미널 직원이 와서 짐이 아직 안 왔냐고 물었다. 버스 출발은 7시라면서, 비웃는 표정을 하고 사라졌다.

 

6시 45분, 그 와중에 믿을 건 그 터미널 직원밖에 없어서 정말 사정사정하는 얼굴로 어떻게좀 방법이 없겠냐며 부탁을 했다. 짧은 한숨을 쉰 그는 나보고 따라오란 손짓을 하더니 자리로 돌아가서 인터넷을 켜고는 Antik hotel을 찾아 인터넷에 나온 호텔 주소로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가 바로 연결이 안되자, 또 다른 전화를 거는둥 핸드폰을 받는둥 하다가 누군가와 터키어로 통화를 짧게 하고는 나에게 이제 됐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 전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I called him for you. It's 20 Lira.( 650원 * 20리라 = 약 12,000원)
맙소사.


6시 50분,
작은 차가 도착했다. 얼굴도 모르는 어떤 남자가 내려서 우리셋의 짐을 꺼낸다.
그에게 달려가 물었다. 어디서 왔냐고, 이 짐은 어디있었냐고.
그 남자는 불안한 표정으로 터미널 직원만을 찾으며 자기는 안틱호텔에서 왔다고만 계속 얘기했다.
남자가 온 걸 확인한 터미널 직원은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우리더러 이 남자는 자기가 데리고 있는 driver라면서
나에게 받은 20리라중 10리라를 그 남자에게 건네주는 시늉을 한다. 이 남자한테 수고비로 주는 돈이라면서.
그리고는 차가 곧 출발하니 빨리 짐부터 실으라고 보채며 얼렁뚱땅 뭉개려 한다.


▲ 애증의 안틱호텔


분명 장난을 친 것이다. 호텔주인이 같이 짰는지 아니면 터미널 직원만 혼자 벌인 짓인지는 몰라도 
전화한지 5분만에 왕복 20분은 걸리는 호텔까지 다녀올 수는 없다. 
가까운 어딘가에 짐을 숨겨놓고, 7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앞둔 우리를 애닳게 한 뒤에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었다.

짐이고 뭐고 화가 난 엄마가 우리 짐을 가져온 그 남자에게 영어도 아닌 한국어로 막 따지며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그 터미널 직원은 급하게 엄마에게 10리라를 다시 쥐여주며 Have a good trip 이라며 악수를 청한다. 
참으로 낯짝도 두꺼워 말도 나오지 않는다.   



당황한 나도 나지만, 
아빠가 무척이나 화가 났다. 시간이 그리 많았음에도 중간에 호텔 주인에게 확인전화 한번 하지 않고, 시간도 확실히 하지 않고 짐을 무방비로 냅둔 우리들의 방심에 , 자칫 여행 전체가 망가질 위험에 잠시라도 처했다는 것에.

좋았던 터키의 인상이. 그 10리라 때문에, 고작 6천원 때문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아빠는 주한 터키관광청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우리아빠는 20여년간 기자이셨음.)

난 은근히 기대했는데, 

돌아오니 아빠도 귀찮으셨는지. 유야무야 묻혀졌다...


 

# 야간버스 해프닝

그렇게 난리를 치고 버스를 탔는데,
출발한지 1시간도 안되어서 주변이 웅성웅성하다.
밖을 보니, 큰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아마도 괴레메에서 큰 도시로 이동한 뒤 버스를 옮겨타는 모양이다.
저마다 행선지를 외치고 있는 버스들 가운데 우리의 목적지인 파묵칼레를 외치는 버스에 올라탔다. 행선지를 세번씩이나 확인하고! ㅎㅎ

티켓에 써있는 좌석대로 앉는 걸 보니 이 버스가 맞는 것 같지만, 아직 터미널에서의 흥분이 채 가라앉기 전이라 출발전 긴장하고 있는데 부산한 가운데 버스 기사가 버스 내 사람들을 죽 훑어보다가 날 쳐다보더니 따라나오란다.

부모님의 불안한 눈빛을 애써 진정시켜드리고 그 사람을 따라 버스 밖으로 나왔다.
밖을 보니 바닥에 내팽개쳐진 짐이 세개 있는데 나보곤 우리 일행의 짐이냐고 물었다. 아마, 주인을 잃은 짐인데 어리버리할 것 같은 외국인이 마침 셋이니 불러낸 모양이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 이제 괜찮다고 들어가라는 말 한마디 없이 또 다른 사람을 부르러 가버렸다.

 

어찌됐든 별일 아니니 다행이다 라며 사과고 뭐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이번엔 우리 자리에 어떤 남자가 와서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아 이건 또 뭐냐..

우리 자리는 총 세석. 엄마랑 나랑 앉고, 뒷자리 한 자리에 아빠가 앉았는데 어떤 남자가 우리 아빠더러 자꾸 자리에서 비키라고 하는 거다. 당황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는 티켓을 보여주면서 이미 예약한 자리라고 계속 얘기해봤지만 그 남자는 막무가내로 Change만 외쳤다. 


나중에 상황을 파악하고 보니,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는 버스에서 남녀의 혼석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 여자는 여자끼리 앉고, 남자는 남자끼리 앉기 때문에 표를 살 때부터 성별을 구분하여 티켓을 끊어준다. 우리 티켓의 경우, 엄마아빠는 부부여서 같이 붙은 두자리를 끊었고, 내가 여자티켓으로 뒷좌석 한좌석을 끊은 것이다. 나머지 한자리의 주인은 우리에게 소리를 지른 그 남자의 아내였는데, 아마도 혼자 야간버스를 타고 파묵칼레로 가는 모양이었다. 결혼까지 하고 남편까지 둔 그 여자분 옆에, 우리 아빠가 앉아 있으니 그 신랑이 와서 바꾸라고 다짜고짜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이슬람 국가는 처음이라, 내가 여태 겪지 못했던 웃기는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겠단 생각은 했다. 그래도 예약된 자리에 앉아있던 우리 아빠와 나한테 어떤 설명도 없이 화만 내는 건 너무 했지. 우린 외국인인데, 한 번 설명해줄수도 있었잖니. 난 또 우리가 뭐 심각하게 잘못한 줄만 알았다고.ㅜㅜ 

이 와중에 옆에 앉은 여성분은 밖에 있는 남편과 계속 손을 흔들며 수줍게 인사를 하고 있다. 그래도 그분이 귀여워서 참았다. (으잉?)     

거의 우등버스의 넓이를 확보하면서도 50명은 거뜬히 태울것 같은 대형버스 
자리마다 개별 모니터와 헤드셋이 완비되어 있고 
비행기처럼 차내 음료 서비스 및 과자가 제공되는데 차이티. 커피. 물. 콜라 주스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디테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간단한 안전벨트 하나 없다는 것이 함정.(무서운 속도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데도!)

 


나는 커피를 시켰는데 먼저 컵을 나눠주고는 곧이어 핫포트를 들고 나타났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뜨거운 물을 흘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따르는 내공이 장난이 아니시다. 커피 따르는 내공만큼 시간을 보낸 게 분명한 루틴한 무심한 표정.
터키쉬의 얼굴중 잦은 빈도로 보이는 전형적 표정이다
터키에어라인 스튜어디스도, 터키야간버스의 직원도. 활달한 터키인의 이면에 쓸쓸한 모습이 안쓰럽다.  

물티슈로 얼굴을 대충 슥슥 닦고 피곤한 눈을 감아보지만 승차감이 영 안 좋다. 
야간기차는 간질간질한데 이건 조용히 갈때나 간질하고 나머지는 울렁울렁하다.
얼른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다.

 




'Travel > Turke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색 호수의 땅,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4) 2012.11.08
파묵칼레 아침산책  (2) 2012.11.01
불청객  (6) 2012.10.27
풍선투어  (6) 2012.10.17
카파도키아 본격 데이투어 Green Tour: 그린투어  (4) 2012.10.07
지중해의 맛  (2) 2012.09.04
  • 2012.10.28 23:53

    읽는내내 내 얼굴이다 화끈거리네... 고생했어 ;ㅁ;

  • Mina 2012.10.29 15:11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 간다는 가장 큰 두려움이, 행여 사건사고가 터져도 그 어떠한 대처도 '잘' 할 수 없는 날보며 한없이 작아진다는 거_ ;;; 모로코 갔을때 생각나용... 흑 ㅠ ㅋㅋㅋㅋㅋㅋㅋㅋ 언니! 보고싶다잉 ^^

  • 조블리 2012.10.29 23:35

    우리 이제 곧만나는거야?파묵을 오는단계군!!!니글읽으면서 나도 다시한번 터키의 정취를느껴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