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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Russia

나의 러시아

졸린데 눈을 감지 못하겠다.
나의 러시아가 내 눈을 붙든다.
예습 없이 들어온 수업에 중요한 것들을 구겨넣고 허겁지겁 나가는 기분
그것도 다시는 듣지 못할 명강의를



지금은 풀코바2 공항.
핀란드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핀에어 AY688을 기다리는 중이다.
12시 35분 출발인데 벌써 시간은 12시 20분을 넘어가지만 비행기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우린 그저 대합실에 앉아 계속 대기 대기 대기할 뿐이다.

핀란드로 가는 길이지만 여긴 아직 러시아
무언가 일정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마음속에 한없는 인내심이 자동발동한다.
여긴 러시아니까. 그래 러시아니까.

생각해보면 중국에서도 많이 그랬다. 
'여긴 중국이니까'라는 말은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의 모든 이유가 되었었다.
하지만 중국이 비합리적 처사에 대한 '만사핑계'의 느낌이라면 여긴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
중국처럼 낙후되었다기보다. 그냥 좀 무서우니까. 쫄아서 알아서 기는 느낌?

 ▲ 공항에서 대기하는데, 음료수처럼 시바스리갈을 들이키던 러시아 여성분. 저거 반병이상 비우고 일어나셨음.

 

고작 4일동안 그것도 상트 2일은 가이드 보호아래 있다 가는 길이지만, 짧으나마 이 나라에 대한 느낌은 남는다.
예상했던 무서움,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실체를 조금을 벗긴 이곳은 역시 똑같이 사람 사는 곳.


식당에 가면 옆자리에서 바비인형이 밥을 먹고, 지하철을 타면 긴 속눈썹과 파란색 눈동자에 시선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러시아 미녀'들이 가득한 멋진 나라.


PUB에 가면 우리와 똑같이 축구를 틀어놓고 맥주잔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며 선수들을 응원하는, 흑빵에 치즈를 뿌린 맥주안주를 먹는 나라.


그리고
무려 가을인데도 손가락이 시려워서 사진을 못찍는 곳. 피곤함을 배가시키는 움츠러든 어깨와 반대로 정신이 번쩍 든 머리로 여행한 첫 추운나라 여행.

                            ▲ 흑빵 & 치이즈


아직까지 외국에게 많이 개방되지 않아서 (러시아)사람들이 외국인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조금은 경계하는 느낌?
붕괴된 구소련의 이력이 우리에게도, 일관성을 지키지 못한 그들에게도 남아
친근하게 외국인에게 웃어주기엔 약간 민망한 그런 느낌.


예술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호두까기, 백조의 호수, 지젤의 발레,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푸쉬킨, 안톤체홉의 문학, 칸딘스키, 샤갈의 미술) 전세계의 탑을 달리는 역사와,
그 예술의 역사를 숭고하게 진실함으로, 초롱한 눈으로 지켜나가는 러시아 사람들의 자부심이
이 거대한 대륙을 차지한 저력은 아닌가.


지금은 시기적으로 조금 빈곤한 위치에 있을 뿐. 불과 30년여전의 화려한 역사를 앞으로 근 시대에 되찾을지 모른다는 그런 자부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비싸고 나라는 제대로 굴러가는지 마는지 팍팍한 생활이 얼굴을 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은 아닌가. 


아 사람들이 일어선다. 이제 들어가나보다
나의 러시아,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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