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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

백일상 이야기 돌아보니 아기 백일 잔치를 준비하며 예상 외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대단한 처음보는 손님이 오는 것도 아니고 흔히들 불편해하는 시댁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심지어 백일 사진은 스튜디오를 예약해 놓아서 집에 차리는 백일상은 약식이었는데. 일단 내가 이런 행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해 본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기 때문인 것 같다. 회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철부지 둘째라는 이유로, 오래된 연인이자 꽁냥거리는 기념일은 오그라든다는 이유로, 자칭 스타일이 형식파괴적이라는 이유로, '본 행사'의 무게를 제대로 감당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한 아이의 엄마의 입장이 되어 온전히 아이를 키우도록 시간이 주어졌고 그 아이의 처음 맞는 기념일로써 백일을 준비하게 되니 더는 빠져나갈 구실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 더보기
달리기 두번째 이야기 작심삼회가 아니라 작심일회였다. 거창하게 글까지 써놓고서는 두번째 달리기는 한달하고도 오일만에 이뤄졌다. 게으른 나를 반성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뛰었는데도, 그저 20여분 투자한 그 시간에 대한 소감을 또 한번 거창하게 밝히는 포스팅이다. 뛰고 오니 놀랍게도 기분이 무척 심플해진다. 주변의 몇가지 묵혀둔 걸 자신있게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살까말까 할까말까 고민되는 것들? 정리하는 것? 연락하는 것? 그냥 하면 된다. 혹은 하지 않기로 하던가. 깔끔하게 어두운 방에 박혀 고민하고 주저하는 시간에 뭐든 시작하고 지속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몸의 세포가 깨어 그런지 활력이 생겨 그런지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땀 흘린 후 개운함 때문인가. 나처럼 생각만 복잡한 걱정인.. 더보기
아기 앞에서 춤을 추었다 계절이 바뀌어 옷장정리를 하다가 미국에 여행갔을 때 샀던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글씨가 샛노랑색이라 알록달록해보여 그런지 아기가 내가 입은 티셔츠를 유심히 바라 보았다.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비치에서 산 기념 티셔츠. 정면엔 서핑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정확히 무엇이 써있는지 몰랐던 나 역시 고개를 내려 읽어 보았고 핸드폰을 열어 정해진 운명처럼 Surfin USA를 틀었다. 그리고 아기 앞에서 춤을 추었다. 처음엔 내 몸짓에 반응하는 아기가 귀여워서 팔을 조금 흔드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노래가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어느새 거의 막춤에 가까워졌다. 아기 가재 손수건을 깃발처럼 한손에 들고 저녁무렵 어두워진 거실 한가운데서 온몸으로 춤을 추었다. 비치보이즈와 비틀즈 척베리 듀란듀란의 음악에 춤을 추었.. 더보기
아기는 엄마의 미안함으로 키운다 오늘로 아기는 90일이 되었다. 부쩍 이 아이가 사랑스럽다. 아기는 이제 피부에 동전 습진 같은게 생기거나 눈물샘이 확연하게 안터지거나 뒤통수가 균형이 안맞는 등 조금씩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나는 이 친구를 더 관찰하고 아끼고 그리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갓 태어난 상태의 아기에게 나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그 당시의 난 아기란 완전무결의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이 생각도 지금 돌이켜보면 옳지 않았다. 아기는 아무리 예정일을 채웠어도 모든 장기의 성숙을 다 갖추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며, 태어날 때 문제가 없었어도 어떤 장기들은 단지 신생아라는 이유로 쉽게 이상을 보이고 특별한 조치 없이 단지 월령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 더보기
날 닮아 잘 자요 가끔 아는 언니 동생들이 연락와서 아기는 잘 기르고 있냐고 묻는다. 한 언니는 그 시절의 자기는 거의 좀비였다고 했고, 또 한 친구는 2년이 넘도록 새벽에 두세시간마다 깼다고 했다. 기적이 온다는 백일까지는 잘자고 잘먹으면 그것으로 백점짜리 아기라고. 그때마다 난 '아기가 날 닮아 그런가 잘 잔다'고 대답하곤 했다. 우리 아기는 신생아시절이 갓지난 한 45일 무렵, 그러니까 9월 들어선 첫 날 밤잠 8시간을 기록했다. 그날 새벽에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미동없이 잠자는 아기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대보았지. 그날을 기점으로 하루가 다르게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날은 6시간 5시간 7시간. 불규칙 했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초반엔 10시 가까이 되어 재우다가, 재우는 시간이 8시쯤으로 좀 일러지.. 더보기
우는 인간 제3의 인물은 과연 어떤 인간으로 자라날 것인가. 아직은 그 어떤 다른 수식어를 붙일 수도 없이 그저 우는 인간이다. 누가 내 애는 울지도 않을 것 같다고 했나. 임신 중 우리 부부조차도 우리 애는 얌전하겠지? 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왜죠? 누가 뭐래도 아기는 운다. 밑도 끝도 없이 우는 생명체에 대처한 경험이 난 별로 없다. 1. 신생아의 울음은 몇 안되는 상황밖에 없다고 했다.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었거나, 졸리거나, 지겹거나, 너무 산만하거나 명확한 알고리즘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다. 다섯가지 조건을 하나하나 점검하면 답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답은 늘 쉽지만은 않다. 2. 임신 전에 식당 같은 데서 엄마가 애를 울리면, 남편은 한 번씩 꼭 돌아보곤 했다. 징징.. 더보기
일기는 집어치우고 새벽에 일어난 아기 때문에 눈을 떴다. 동이 트고 있었다. 고운 푸른 빛을 띤 아침의 하늘이 사랑스러웠다. 창문에 바싹 붙으니 왼쪽 건물 끄트머리로 해가 낼롬 보였다. 앞동 아파트 때문에 가려서 온전히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이 예쁜 날씨를 즐기는 방법은 밖에 나가는 것이다. 요새 주변 몇 지인들처럼 달리기를 하고 싶다고 , 지금같이 좋은 날 새벽공기 맞으며 아침달리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소파에 누워 일기를 줄줄 쓰다가 집어 치우고 그래 그냥 나도 뛰러 나가보기로 했다. 남편도 아기도 자고 있었다. 산책 좀 다녀오겠다고 문자를 남겨두었다. 런데이 앱을 받으며 반팔 티와 긴 레깅스를 챙겨입었다.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충전해둔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생각이 복잡할수록 발을 못 떼고 이것저것 걸리는 법.. 더보기
완벽한 새벽 오늘 아기는 새벽 4시반에 깼다. 야간 출근한 남편은 오늘 당직이라 밤을 새고 새벽 5시에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수유를 마치고 나니 5시가 좀 넘었다. 아기를 토닥이며 다시 침대에 뉘였다. 몇 주전만 해도 5시가 좀 지나면 어슴푸레 밝아졌는데 해가 부쩍 짧아졌다. 아직 컴컴한 실내에서 거실 스탠드를 끌까말까 망설였다. 곧 해가 뜰 것이다. 등록된 차량이 주차장에 들어왔다는 멘트가 월패드에서 조그맣게 들렸다. 리모콘을 들어 TV를 켰다. 오늘은 US OPEN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다. 오늘 조코비치의 캘린더 그랜드슬램이 결정될 것이다. 일년에 네번 열리는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그는 올해 세 경기를 모두 이기고 마지막 한 대회 결승만 남겨놓았다. 누가 이겨도 기록적인 우승이고 누가 이길지 예상되지 않을만큼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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