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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제 3의 인물

조바심은 육아의 적

최근 친구의 '하루에 일분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삶으로 진입했다'는 말이 자꾸 맴돈다. 일분은 커녕 하루에 한시간도 온전히 차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더욱 대비가 되는 것인가보다. 그 삶이 부럽거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해 억울하다는 말이 아니다. 휴직 2년간 나는 허투루 쓰는 시간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왔다. 그렇지만 어두컴컴한 방에서 한번에 길면 한두시간씩 누군가의 잠듦을 기다리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끝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아무것도 보거나 듣거나 하지 못하고 마냥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평소 지하철에서 남는 10분 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였다.

내가 계획한 넉넉한 스케줄에도 아기가 그 일을 수행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조바심이 난다. 난 별로 계획적인 스타일도 아닌데도 기본적인 먹고 자고 잠시 나갈 준비하는 것만 해도 그러하다. 한개가 틀어져서 꼬여버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일은 수행하지 못한대로 -1 내 체력이 빠져서 -1 아기의 컨디션이 나빠져서 -1이 된다. 기어이 포기하고 일어나면 나름대로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도 필요한 법인데 그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으니 억지로라도 수행시키려고 무리하게 되고 그러면 아기도 나도 더욱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난다고 해도 잠깐잠깐이라 긴 호흡의 무엇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계속 짧은 컨텐츠를 소비하고 정신을 내맡기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뭔가를 구상하는 일을 하려면 최소한 30분 이상의 조용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전에 침대에 누워 충혈된 눈으로 넘겨보는 밀리의 서재 책 몇권을 제외하면 다른 일들은 하루에 한번도 하지 못하는 날이 많다. 몰입의 희열을 느껴본지가 오래다. 아마도 일분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그 삶에서 내가 아쉬웠던 부분은 이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시기도 지나가는 법. 온전히 놀아주고 먹이고 재워주는 데 집중하면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다. 지금 나의 시기는 그것을 찾을 때이다. 남의 떡이 맛있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오늘은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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