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스패로
사실 이영화의 감상평을 쓸 생각이 아니었는데, 그보다 스타일리시함 이상의 쓸 내용이 있을까 했던 영화였는데, 없는 감정도 누군가의 감상평을 보다보면 생겨나는 법인가.
그냥 시원한 영화를 보고 싶었다. 너무 유치하지도 않고, 너무 울음나지도 않고(난 영화보다 잘 우니까), 너무 빤하지도 않은 약간은 특별한 영화. 게다가 제니퍼로렌스는 아메리칸허슬과실버라이닝플레잉북 이후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여배우중 하나가됐고, 뭐든 극한의 훈련을 거친 여주인공이(남주인공도물론) 슬픔을딛고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류의 영화를 나는 늘 좋아했으니.
극한의 예술(?)훈련이 예상외로 너무나 직접적이라서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 사실 그 학교에서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인간은 욕구의 퍼즐이라 빈 자리를 찾아서 조각을 채워주면 무엇이든 줄것이다.700피스퍼즐맞추다 마지막 한조각이 없어서, 퍼즐 제조사에 편지를 보내 몇주만에 마지막 조각을 우편으로 받아 채워넣어봤던 내 기억으로도, 699조각으로는 안되는 마지막 그 한방울을. 반드시 밀어넣고싶어지는게 사람의욕구라는 걸 공감한다.
이사람이 원하는 건 권력이다 , 이사람이 원하는 건 속죄이다, 그런부분을 짚은 것은 인물에 좀더 입체적으로 다가가는 작가의 시각인 것 같다. 이제 이런 스파이물도 뻔한케릭터로는 부족하니까. 인물에 집중하는 건 , 내가 언제나 흥미로워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이 스파이물 영화를 굳이 분류하자면 007보단 제이슨본에 가깝겠지. 화려하기보다는 우울하고 , 절박하고,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 .
스파이영화치곤 영상이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어둡지도 않고 색깔도 마음에 들었다. 화려한 액션보다는 감정에 집중했다는 반증일듯.
그래서 무대도 그런곳이었을까, 냉전시대의 양축이지만 굳이 미국이 아닌 러시아와 헝가리를 고른건 그 도시들이 갖고있는 특유의 정서 때문일테니. 입김이 나올것 같은 회색의 겨울 풍경에 목도리를 두른 모습, 열쇠로 아파트 나무문을 열고 현관에 코트를 거는 그런 장면들이좋았다. 그야말로 글루미선데이의 도시다우니.
무엇보다-
앞뒤로 조금씩밖에 안나왔지만, 발레를 하는 장면들이 역시 언제봐도 황홀하였다. 특히 볼쇼이발레단 군무는 영화였지만 실제 공연을 보는 것만큼 멋있었고. 여주의 독무 역시 급히 사개월만 배웠다기엔 너무도 뛰어난 결과물인듯. 사고로 발목이 부러질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건, 나도 그 친구와 동화된 심정으로, 물론 몸은 앉아있었지만 맘속에선 그토록 높게 점프해서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발레장면만큼은 전지적 시점이 아닌, 일인칭 시점으로 관람하고 있었다고 할까.
[책] 레드스패로우 후기
슬픔의 초록색
속임수의 노란색
진실의 보라색
색깔로 사람의 의도를 알아 채고 더욱이 그 색깔이 실오라기가 되었다가 후광이 되었다가 햇빛과 섞여 색깔이 변했다가 속임수의 색이 열정의 색과 더하여 교활한 주황색이 되었다 하는 걸 보면 이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도록 신선하다. 무채색의 추리소설에 다양한 색깔을 입힌건, 이 소설이 눈에 띄게 기억되는 특별한 장점이 될것이다.
또한 감정을 나타내는 색깔들은 초반부터 착한 캐릭터와 나쁜 캐릭터를 구분하게 해주고, 그것이 한편으로는 불안감없이 마음놓고 책을 읽을수있게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추리스파이물에있어 치명적인이러한 반전제한적인 장치를 안고서 향후 스토리를 어떻게 전개시켜나갈것인지 본격적인 2부가 기대가 된다.
등장인물중에는 짖궂고 우악스럽지만 명철한 ‘게이블’의 캐릭터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그의 대사에만 몇번이나 웃음이 터졌다. 언제부터인지 ‘추리’를 전담으로 하는 소설속 등장인물중에 이렇게 제멋대로 다혈질이나 자기는 돌보지 않고, 사명감이 있고 능력있지만 어쩐지 본부에서는 골칫덩이인 이들이 주인공을 꿰차는 느낌이다. 스노우맨의 해리홀레도 그랬고 가깝게는 히가시노게이고의 가가형사 같은 사람도.
시작에 이 책은 단편 같은 작고 가벼운 책이었는데, 그 무게만큼 부담스럽지 않고 매끄럽게 소설속으로 잘 안내한다. 그러나 들어갈수록 그 이야기는 생각보다 복잡하면서도 탄탄했다.
본격적으로 주인공들이 얽히면서, 훨씬 더 몰입도가 생겼고, 감정적으로도 이입이 되었다. 그들에 대한 묘사가 더욱 세밀해질수록 사랑스러워지고 ,인간다워졌다.
원작이 영화를 어떻게 뛰어넘느니 마니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그냥 영화의 예쁜 비주얼은 비주얼대로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었고, 소설의 묘사는 묘사대로 내밀한 감정이 호강하는 기분이다.
문장을 수집할만큼 철학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차곡차곡 쌓아가는 탄탄한스토리가 알찬 추리물, 스파이물 같은 느낌. 한장분량으로 백장을 뻥튀기하는 자기계발서보다 꼭꼭 들어찬 알곡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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