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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Life

지도선배

Round 1


갑자기 인사부 과장님한테 메신저가 왔을때부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이름을 부르고 시작했고,
시간이 늦었으며
바쁘냐고 굳이 물었기 때문에.


"지도선배 할 생각있어?"


신입행원시절, 당시의 모든 것이었던 두달간의 연수원생활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이 바뀌는 합숙생활의 처절함 속에서.
가장 빛나던 위치에 서 있던 지도선배.


그게 가능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내 동기 몇이 지도선배를 다녀온 이후로 그건 실로 괜찮은 평가를 받는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낙담같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제의를 받게 되다니
사실 지도선배 그 자체보다 내가 그런 제의를 받을 수 있었다는 그 자신감 그게 더 컸다.
책임감도 느껴졌다.
난 그런 제의를 받을만큼 지점에서 잘 하고 있는가
동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가
혹은 주변에는 폐 끼치고 대외적으로만 잘 하는 척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채워지는 자신감만큼 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선순환의 의지가 마구 솟는다.

 



Round 2


예전에 '상사가 떴다' 행사를 했을 때 직원선발과정에서 
인사부의 그 과장님이 내게 제의를 한번 했다가 퇴짜를 놓은 적이 있었다.
이번 지도 선배에 최종적으로 임하지 못했을 때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누구나 사람은 억울하다거나 분노를 돌릴 대상이 필요하니까. 참 유치하지만.


은행은 작은 조직이 아니다.
이렇게 큰 조직은 그렇게 한 두사람이 마음먹은대로 간단케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변수든 작용할 것이고, 나는 그 중에 아주 일부일 뿐이다.
준비하는 자는 준비된 채로 있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때 열심히 임하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될 때는 마음을 비우고 보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닐지 몰라서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말이 맞는 것이다.



내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내가 그 모든 걸 감안하고서도 꼭 뽑고 싶은 사람이었으면 왜 안됐겠는가.
지점장님이 허락 안 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다른 분이었으면 가능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부차적인 문제이다. 이게 모든 걸 결정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굴곡이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을 큰 폭으로 끌어안고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좋은 일이 있으려다가 아닌 것 뿐이잖는가.
나는 이 사건을 대하며 조금 더 성숙함과 겸손함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믿을 수 없을 것 같던, 그리고 한 달여간 우쭐해있었던 나를 돌아보게 됐다.
왠지 내 자리가 아닌것처럼, 왠지 내 옷이 아닌것처럼 어색했던 첫날 제의를 들었던 그 때도 생각났다.
대리님께 의기양양 얘기하던, 그리고 루키를 다녀온 친구들에게 남몰래 갖고 있던 으스대는 마음을
언젠가 터트리면 날 우러러볼 것 같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임태훈도 생각났다.
몇 년의 검증을 거쳐 결국 광저우까지 올라가게 되는 그 모습을 나는 지켜봤고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 2008년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을 때 그가 초연하게 그 시간을 버텨냈던 걸 나는 알고 있다.



의연하게 사실을 인정하고 나는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 가슴속에 나는 그러한 제의를 받을만한 훌륭한 선배로 비춰졌다는 자부심만은 남겨놓을 것이다.

그게 내 스스로에게 주는 최소한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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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is zin 2010.12.16 18:14 신고

    태그의 지도선배하고싶었어요 가 난 왜이리 소박하고도 귀엽게 들리는거지? ㅎㅎ
    그 많은 사람들 중 후보에 올랐다는 것부터 당신은 실로 괜찮은 평가를 받고있는 아이라는 증거.

    그리고
    '아, 후보 올랐었는데, 결국 안됐어'의 짧은 문장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심도있고 맛깔나게 풀어줘서 독자로서 고마운 마음. ㅎㅎ
    나에게 당신은 실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블로거라는 사실 ㅋㅋㅋ

    • BlogIcon Nangbi 2010.12.20 00:09 신고

      진짜로 하고 싶었어요 잉 ㅋㅋㅋㅋㅋ

      언젠가 언니한테 얘기한 적도 있었지만
      한줄로 끝낼 저 이야기를 길게 늘여쓴 건
      사실 나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컨트롤하기 위한 필수과정이라고요.

      저 일이 일어나고 나서 5분도 안되는 사이에 작성된 글이자, 블로그 소스로 재탄생되는 순간이지.

  • 행자 2010.12.16 20:23

    결국 아쉽게 되었지만
    나 스스로 대견하다 칭찬할 수 있는 사건이었던건 사실이니까
    마음껏 머리 쓰다듬어 주렴.

    일로 포스트 보면서
    회사생활의 기쁨은 월급만이 아니었다는걸 새삼스레 떠올렸어.

    흐흐
    열심인 모습이 보기 좋아요

    • BlogIcon Nangbi 2010.12.20 00:02 신고

      쓰고 나서 보니까 여기다 올리고 싶었던 건
      남들이 대견하다 칭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더라.

      회사 생활은 그냥 삶의 연장인 것 같아. '월급'개념이 들어가면서 좀 더 삭막해지고, 그 치열함만큼 얻는 열매도 달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