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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일기

쓰기에 대한 잡생각

  • 블로그에 편하게 글을 쓰다가도 가끔 불편해질 때가 있다. 쓰고 싶은데 잘 못 쓰고는 답답해하기만 한다. 요새가 그렇다.

  • 어떤 주제의 글들을 기획하면 거기에 얽매이게 되는 것 같다. 글의 길이도 그렇고 첨부하는 사진도 그렇다.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도 뭐라하지 않고 아무도 관여 않는데 나만 혼자 그렇다.

  • 80%만 솔직하고 20%은 숨긴 채 솔직한 척 쓰는 걸 잘 하지 못한다. 20은 오픈하기 싫은데 나란 인간은 20과 80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아 지금 이런 기분과 감정인 것이니 80도 설명하지 못한다.

  • 모바일 쓰기 환경이 편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폰으로 쓰기를 시원하게 늘어놓기란 어려운 일이다. 손목이 너무 아파. 아니 내 폰이 너무 무거워. 심지어 케이스도 없는 생폰인데

  •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쓰기에 집착하는가. 누구를 위한 쓰기인가? 뭐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있다. 나를 위한.

  • 언젠가 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생활' 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들춰보다가,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과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웃음지어졌고, 나 또한 그만큼 재미있는 일상의 연애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과의 에피소드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누가 읽고 싶어할까? 남편이? 남편의 절친들? 아니면 다른 불특정 다수들도 궁금해할까? 사실 임경선 작가의 남편 역시 아는 사람이 아닌데도 내가 기꺼이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을 특정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보편적인 감정 때문일 것이긴 하다.

  • 나는 여행기를 왜 쓰나. 아무도 쓰라고 하지 않았고 아무도 보채지 않는 것. 지난 여행기 올리기에 허덕이고 있는 나를 보면 내가 왜 이걸 이렇게 필생의 과업처럼 하고 있나 의아할 때가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여행기는 내 추억을 위해서 쓴다. 내 추억을 생생하게 박제하기 위해서. 내 잘나온 사진은 올릴까말까 고민하게 되는데 내 진한 추억은 셀카 사진에도 묻어있는 거라서 여전히 날에 따라 갈팡질팡이다. 그렇게만 치면 포토북을 만들어야 하지만 소수의 피드백과 공유하기 쉬운 특성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 무엇하나 정리되지 않은 채로 계속 뭉개져만 있는 스스로가 싫다. 뭉개진다고 하소연하는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싫다.

  • 내게 글은 감정을 다스리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어떤 사건에서 머릿속에 시나리오를 오랫동안 순차적으로 그리기 어려운 나에게 메모장 같은 역할을 한다. 논설문을 쓰기 전에 논거 나열이 적절한지 흐름이 이상하지 않는지 다듬는 데 도움을 준다. 머릿속에 화가 나거나 복잡하게 엉켜있으면 내키는대로 전부 나열하여 보고 그 실체를 밝히는데 도움을 준다.

  • 말 많고 불안한 내가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짐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무것도 행하지 않을지라도 계속해서 다짐하게끔 한다. 어떨 때는 그 다짐만이 남아서 아무것도 없이 말만 남는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다짐을 했으니 이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 내 글을 계속 돌아보면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고착화한다.

  • 시간만 허락한다면 공들여 잘 다듬어 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잘 다듬는 작업은 아주 귀찮은 일이다.

  • 다듬겠다고 쌓아둔 걸 보는게 더 스트레스여서 요새는 (주로 자기전에) 충동적으로 포스팅하고, 이미 저질러져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안도하며 며칠 사이에 아무때나 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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