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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제 3의 인물

없던 모성애가 생기는 것 까진 아니지만


친한 친구가 연락이 와서 아이 키우는 건 어떻냐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아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은근히 좀 감동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팔 안쪽으로 머리를 실어 품 안에 안아주려 할 때 보이는 표정이나, 품에 안겨 노래를 불러주면 무장해제하고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나.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건 아무래도 수유시간이다. 배가 고파서 신경이 곤두 서서 마구 우는 와중에도 수유를 하려고 품에 가까이 안으면 본능적으로 입을 오물거리며 먹을 것을 위해 집중하는 그 모습. 나만이 아기가 원하는 것을 가진 유일한 자로서 기꺼이 젖을 물려줄 때. 그 입으로 허겁지겁 가져가 곧 만족스러운 듯 빨아먹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이 작은 일이 그 친구에겐 세상의 전부인 일이라고 하니 그게 좀 감동적인 것 같다.

그리고 감동이 지나갈 때쯤엔 아, 내가 먹을 것을 책임지는 존재가 되었구나. 나아가 이 작은 생명체는 먹을 것을 주는 내가 없다면 기본적으로 살 수 없고, 적어도 내가 이 작은 생명체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이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동안엔 세상에서의 나의 필요를 사회적으로 혹은 언어적으로만 느꼈지만 이렇게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으로 느끼기는 처음 겪는 기분이다.

아이가 칭얼대서 먹을 때가 안되어도 젖물림으로 달랠 때가 있다. 특히 새벽 무렵 칭얼대어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물리거나, 침대에 걸터앉아 그냥 푹 끌어안고 가슴을 내어주면 무릎에 누운 아이가 하늘에 달린 젖으로부터 고개를 들고 빨아먹을 때. (수유쿠션 사용이나, 올바른 수유 자세 같은 그런 이론적인 것들 생각 없이) 이 자세를 하고 있는 나에게 취하는 느낌이 든다. 원초적이다 못해 원시적인 여자 사람의 모습을 내가 똑같이 하고 있는 데서 희한한 감정이 몰려온다. 내가 비로소 인류의 한 일원이 되었구나 그런 기분이랄까. 21세기의 한복판에서 몇천 년은 반복되어왔을 원초적인 대물림의 실상을 경험하자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