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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회사생활

출퇴근에 대한 단상

엊그제 심심풀이로 조군이 보내준 앱을 해봤는데, 칼퇴 100% 사격왕이 나왔다. 그냥 웃자고 한 건데, 거참 나와 딱 들어맞는 내용이라 신기하기도 하다. 첫판에 좀 고민했던 몇개문항을 고쳐서 다시 해봤는데 또 똑같이 나왔다. 이쯤되면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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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근태에 대해서 두드러기 증상을 보인 건 나에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상암동에서도, 충정로에서도, 영업부에서도 늘 그놈의 출근시간이 항상 나에겐 킬포였다. 내가 킬링하는게 아니라 내가 킬링되서 문제지만.

직장인에게 근태란 뭘까. 성실함의 척도? 배우겠다는 자세?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 다 좋다. 성실함이, 배움과 열정의 의지가 그 반대보단 대부분 좋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대개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다. 업무 능력이 부족하면 일찍와서든, 야근을하든 , 집에서든, 어디서든 채워서 해내야 하는 것이 바로 업무 책임감이다. 업무를 새로 시작하는 사람은 즉전감이 되지 못해 옆직원에 2인분의 부담을 지우는 것이니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자신의 몫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직장인의 염치이자 의무이다. 그런 경우 눈에 띄는 부가적인 업무 정진 노력은, 2인분 하느라 고생하는 옆직원에게 그나마 위안과 기꺼움의 동기부여를 주겠지.
근데 은행을 10년 넘게 다녔는데 근태밖에 내세울 것이 없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아침 먹고 담배피고 커피 마시고 결국 9시 출근한 이와 같은 시간에 업무를 시작한다? 사고좀 치고 실적이 안좋아도 근태 좋으니 이만한 직원이 없다? 할일이 있어서 야근하는게 아니라 그저 윗사람보다 먼저가면 눈치보이니 앉아있다? 이건 좀 이상한 게 아닌가..? 업종을 막론하고 사기업 문돌이의 자기PR이란 대부분 근태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는 것이 나에겐 늘 이상한 부분이었다.

본점 건물로 이동하고 첫 출근. 난 아침 반차를 썼으니 그나마도 정식은 아니었다. 조직개편후 우리의 부서장은 바뀌었으나 사무실 공간이 아직 임시로 따로 있기 때문에 부서장과 별도로 움직일 거라 예상했다. 근데 들어보니 오늘 아침엔 다들 7시 갓 넘어 출근해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한번에 인사를 하러 올라갔다 하고(아기다시피 본래 정식 출근은 9시이다) 내가 먼저 퇴근하고 나온 저녁에는 모두들 밤 10시까지 밥먹으러 간 부장을 기다리고 있댔는데 심지어 그분은 10시반에 우리 사무실에 내려왔다네? 이건 걍 감시 아닙니까??

이전 부서의 거의 모든 것이 이상했지만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면, 전 지점장님의 “시간에 휘둘리지 말고 하루의 반만 일하고, 나머지 반은 공부를 하던 자기계발을 하던 생산적으로 쓰라”는 당부였다. 당시 발령난지 얼마 되지 않아 휴가를 쓰게 되서 “다녀와서 열심히 하겠다”고 문자했더니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 라고 답장이 왔었던 적이 있었다. 그땐 내가 오자마자 휴가가는 게 싫은 줄로만 알았었는데 지금보니 그건 그분의 즐겨쓰는 멘트, 사람 자체가 명석하게 일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쓸데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비효율적 잡무를 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고, 그 후에도 최대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불필요한 형식적인 것들을 모두 없애주었다. 쓸데없이 시간 뺏기지 말고 생산적인 일 하라면서 -

은행이란 어쩔수 없이 잡일도 있게 마련이고 누군가는 그걸 해야하지만, 새로운 부서에 와서 보니 사업 업종상 어쩔수 없는 일을 잡스럽게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위와 눈치를 위한 수정과 반복과 되돌림과 형식적 프로세스를 그야말로 만들어서 하는 것이 이게 뭔 삽질인가 싶었다. 그 중의 최고봉은 역시 윗사람 코드에 맞춘 출퇴근. 특별한 일 없는데도 인사하느라고 한시간은 일찍 출근을 하고, 컴퓨터 꺼진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할지언정 그분 가실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행태.

아니 무슨 조선시대세요?


ps1. 여기로 이사와서 모두 우왕좌왕한지 삼일째 되던 날 나의 정신적 지주인 ㅎ언니가, 본인은 적절히 생각하는 출근시간과 일이 얼추 마무리되는 시간이면 퇴근하기로 3일만에 마음을 정리하였으며, 야근이 필요하면 당연히 하겠으되 윗사람 눈치보느라 기다리진 않겠다고 그 외에는 눈밖에 나도 어쩔수 없는것이라 선언하였다. 듣고 있던 나 역시 그 이야기에 극공감하며 “사람에게 충성하지는 않겠다”는 거창한 말로 둘이 하이파이브 얼라이를 맺었는데 기분은 한결 깔끔해졌다만 우리의 앞날이 어떨지는 두고봐야할듯 ㅎㅎㅎ

ps2. 여기 있을 기간이 길어야 3개월이라서 내가 한발짝 떨어진 3자처럼 패기있게 굴 수 있었다는 조군말이 사실은 사실이다. 밀도있게 일하자는 게 평소 지론이고 그렇게 하는 게 이시대의 방향과 맞다고 해도 언제까지 함께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그 부서에서 대장격인 부장과의 전면전에 스트레스는 당연 받았겠지. 그럼 앞으로 늘 3자의 시선으로 봐야하겠다. 어차피 그여봤자 고과인데 승진 따위 별 관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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