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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일상

티타임



세팅이라 일찍 와서 아침 연수까지 시간이 삼십분정도 남길래 차를 마시러 스타벅스에 내려왔다. 지갑을 갖고 내려올까 하다가 핸드폰으로 결제 가능한 스타벅스 카드에 돈이 있기도 하고, 혹 모자랄지라도 모바일로 충전이 되기 때문에, 목적지가 확실한 날이니만큼 그냥 핸드폰만 들고가기로 했다. 보고있는 책에다가 핸드폰만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입구로 들어서면서 뭘 먹을까 고민했는데 앱을 켜니 스벅카드로 레몬진저차이티를 마시면 적립 별을 두개를 주는 프로모션을 하고있다. 음 어제부터 목이 간질하니 감기기운도 있는데, 이걸 마셔야겠다. 오! 마침 이건 프리퀀시 프로모션 특별음료이기도 하잖아! 좋네좋아!

사람이 없어 계산대로 직행하니 직원이 날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눈인사로 받고는 카드를 열어 잔액을 봤더니 3천원밖에 남지 않았다. 등록된 모바일카드로 충전을 하면 되는데, 그순간 어제저녁에 분실신고한 카드가 생각이 났다. 분실신고한 카드 외에는 ISP가 없어 충전이 불가능하다. 아까 인사한 종업원이 계속 쳐다보고있다. 일단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뒤로 자연스럽게 물러나서는 돌아서 교보타워지점 CD기로 향했다. 나는 (어쩐지 이런경우가 많아) 다행히 무카드인출서비스가 등록되어있다.

만원을 출금하여 달랑달랑 들고가 내밀며 레몬진저차이티를 달라고 했다. 난데없는현금에 현금영수증까지 입력하고 잔돈 4200원을 받았다. 컵을 뭘로 하냐고 묻는데, 30여분 책을 읽다 갈것이니 머그컵으로 달라고 했다. 최근 매장에 머무르는 손님이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은 커피점과 고객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잠시 책을 펼쳤다가 진동벨이 울려 차를 받으러 갔다. 어마무시한 사이즈의 머그컵에 티백이 돌돌 말려 뜨거운 김이 솔솔 나고 있다. 차가 엄청 뜨겁고 무거워 그런지 덜어먹으라고 왼쪽에 작은 종이컵이 하나 놓여있다.

너무 뜨거운 차를 마시는것은 식도에 좋지 않다고 들었다. 저 거대한 머그컵채로 마시면 아무리 조심해도 식도는 커녕 혀를 먼저 데일 것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작은 잔에 덜어먹는것이 편하긴 하다. 그러나 그렇다면, 환경보호를 위해 굳이 머그컵에 담아달라고 한 의미가 있는건가..?

이런 잡생각을 하며 머그컵에 있는 차를 작은 종이컵에 요령껏 옮겨담는 중이었다. 아,, 실패다. 작은종이컵만큼의 양을 쟁반에 흘린 것이다. 나름 컵끼리 더는 것을 잘하는 편이라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이건 누가 하더라도 십중팔구 실패할 각이다. 머그컵이 너무 무겁고 물의 양이 많으며 컵의 가장자리가 날렵하지 못한데 비해, 종이컵은 너무 가볍고 작아 금세 넘쳐날것만 같아 과감하게 따를수가 없다. ​이미 흘린걸 어쩌랴.. 그냥 두고, 작은 종이컵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두모금쯤 마셨나, 벌써 바닥이 났다. 보던 책을 책을 소파에 엎어두고 오른속으로 머그컵을 들어 왼손에 든 종이컵에 다시한번 따랐다. 또 반은 담고 반은 흘린것 같다. 쟁반에 물이 흥건하다.

세번째 따랐을때 나는 종이컵에 차를 따라마시는걸 그만두기로했다. 이건 책을 보는건지, 차를 마시는건지, 물놀이를 하는건지 알수가 없다. 컵채로 먹는게 차라리 낫겠다 싶어서 이제 반쯤밖에 남지 않은, 적당히 식은 차가 담긴 머그컵을 양손바닥으로 감싸안고 등받이로 몸을 기대는 순간, 무릎에 올려놓았던 펼쳐진 책장에 물방울이 똑 떨어졌다. 쟁반에 이미 홍수가 났으니 그위에 올려져있던 머그컵이라고 무사했으랴..

책장에 묻은 물방울은 재빨리 덜어내야 덜 우글거리게 되는데 냅킨은 안보이고, 근처에 보이는 빈 종이는 아까 그 영수증밖에 없었다. 급한대로 영수증을 들었는데 그 아래 차곡차곡 쌓여있던 천원짜리가 한장 팔랑 날리면서 창문곁 물빠짐 난간사이로 쏙~
마치 나비가 날개짓하는 것 같은 우아한 팔랑임이었다.

난간틈에 손가락도 안들어가고, 직원한테 말해볼까도 생각했는데, 아까 카드에 잔액이없어 뒷걸음질치던 생각도 나면서 약간 주저하는 사이 시간이 8시27분이 되었다. 연수가 30분부터 시작이다. 하는수없이 자리를 접고 일어났다.

올라오는길에 생각이 추가로 들었다. 만원을 그냥 카드에 충전해서 샀으면 잔돈도 없고 천원짜리가 난간틈에 빠질일도 없었는데... 그러고보니 현금으로 샀으니 별2개 준다는 혜택도 못받았네. 난 도대체 뭘 한거지.





ps.
점심시간쯤 되었나. 아침의 일이 하도 황당해서 옆직원에게 얘기했더니 막웃으면서 함께 천원짜리를 구출하러 가자고 했다. 30cm자한쪽 끝에다가 끈적한 면이 겉을 향하게 스카치테이프를 둘둘 말아 도구를 준비했다. 일부러 커피점 바깥에서부터 동태를 살피며 들어갔는데 아까 그 자리에 여자둘이 앉아있다. 이따 다시 올까 했더니, 옆직원이 자기가 나서서 말해주겠다고 한다. 아냐. 그냥 내가 할께

"저기요, 제가 아까 여기 좀 두고간 물건(?)이 있어서요"
"아 그러세요? 네네, 비켜드릴께요"

두분 다 일어나 소파까지 친히 옮겨주는 정성에 조금 다급해졌다. 나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아까 그 난간틈으로 자를 쏙 넣어 조준한지 3초도 안되어 천원짜리를 떡 붙여서 건져냈다. 마치 어릴적 하던 자석낚시처럼. 너무 금세 척 붙여서 올라오는게 너무 웃기고 희한하여 옆에 있던 두 여자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나랑 같이 간 직원은 얼굴은 돌렸지만 끅끅거리며 웃고 있는게 보였다. 물건이래놓고 막상 천원짜리 돈을 건져낸 것이 민망해진 나도 감사하다며 그 여자분께 꾸벅 인사했는데 한분이 같이 웃으면서 덧붙였다.
" 그 물건, 제가 먼저 봤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다시는 여기서 차이티 머그컵에 먹나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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