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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다 가지려 하니까 결정하기 어려운 거라고.
나의 결정장애는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법륜스님인가
대한민국 학부형이 스님을 찾아와서 하는 아이들에 관한 대부분의 질문이
"아이들도 힘들지 않고, 좋은 것도 얻게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냐" 는 거라 했다.
그래서 스님 말씀이
뜨거운 구슬을 쥐는데 데이지 않고 쥐는 방법을 묻는다면 데지도 않고 구슬도 쥐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게 남얘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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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떤 입장에 대한 논의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내가 이 관리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다른 부서 사람들이 질문을 할 때 그 대답을 멋지게 해주는게 나였으면 좋겠고,
내가 좋아하는 분들일수록 나에게 질문해주기를 바란다.
그런 자문 놀이를 하고 있는 상황은 굉장한 자부심을 더해주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질문을 받는 것이란 건 내 개인 시간의 소비를 의미하므로
자꾸 그 패턴이 반복되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왜 다같이 하는데 내가 이 일을 대답해야 하는 주체가 되는건가.
내 사무분장이 어떻게 되어있는건가 이따구 생각이 들게 되는 거다.
A는 무척 조용했기에,
그리고 본인은 그렇게 귀찮은 일은 하지 않는게 좋고,
그런걸 외부에서 어떻게 보든 말든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아주 일관적으로 편안한걸 제1가치로 두었다.
B는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별개로 대외적으론 열정적으로 비추어지는 스타일이다.
행동이 눈에 띄고 어느정도는 보수적 내지는 권위적이며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각하고,
본인이 희생을 감내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늘 되어 있다.
문제는 중간에 낑긴 나다.
A와 둘이 있었을 때는 딱히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
그것은 내가 A보다는 모난돌(혹은 야망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화살이 B에게 돌아갔다.
최근 B의 부상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가 전문역이라는 쉬운 시험에서 전국수석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을 때, 시험이 쉽다는 이유로 나는 전국수석이라는 타이틀을 평가절하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행장 표창을 받았을 때 역시 이건 코미디라고 웃음거리로 삼았다.(본인이 민망해하면서 얘기하기도 했지만, 난 그걸 부러워했기 때문에 그렇게 필사적으로 웃음거리로 삼았던 건 분명하다.) 겸손하게, 정말 진심의 축하의 말을 제대로 건넨적이 있던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모양새다. 언제고 제대로 축하해줘야 할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타이밍을 놓쳤든, 어찌됐든 여태껏 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거다
난 A를 보면서 나는 왜 A보다 더 늘 바빠야 하지 라고 불평하며
B를 보면서 왜 사람들은 나에게 와서 묻지 않지 라고 불평한다는 것.
이건 또한편으로는 자존감의 문제와 또 선이 닿아있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고 자존감이 있으면
내가 이들 사이에서 내 입지에 대한 고민은 아예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낮은 자존감으로는 이 딜레마에 계속 빠져있을 것 같다는 거다. 우산장수,짚신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내가 갖고 싶은 건 무엇일까. 아니 내가 잃고 싶지 않은 건 무엇일까.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무엇을 갖고싶은지가 아니라, 무엇을 잃어도 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되면
나의 결정장애는 좀 나아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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