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urnal & Pic/일상

쉽게 설득 당할지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지인에게 선물을 하려고 덴마크산 꽃병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직구를 하기엔 일정이 촉박하여 3일이면 배송해준다는 국내 공식 판매처를 찾아 회원가입까지 하고 주문했다. 며칠 후 박스로 배달되어 온 걸 뜯어보았는데 이런, 화병 박스가 구겨지고 더럽혀진 것은 물론이고 새것이라 하기엔 택도 없고 지문도 덕지덕지 묻어 좀 중고 같은 느낌?

근데 이것이 그릇을 판매하는, 특히 상품 검수차 여러 번 박스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그런 것들의 특징인지 (브랜드 있는 그릇가게에서 포장해줄 때 상상을 해보면 그렇다) 고민이 됐다. 그렇지만 오프라인에서 여러 사람 손 닿은 상품조차도 정품 스티커는 딱 붙어있는 편인데, 이건 새 상품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인 1센치가량의 스티커마저 떼었다 붙여낸 흔적이 있는 것이다.



선물용으로 구매한 것인데 선물은커녕 내가 쓰려고 샀다고 해도 속상할 판이다. 온라인 판매처 고객센터에 항의할까 생각해보다가 이것이 아까 그릇 상품의 특성인지 몰라 스스로 지레짐작하여 우물쭈물하다 전화하지 못했다. 그렇게 평일 하루를 보내고 설날 연휴가 시작되었고 유야무야 시간이 흘렀다. 야무지지 못한 것.

그러나 일주일이 지났지만 박스를 볼 때마다 계속해서 맘에 걸리던 나는 설날 연휴가 끝난 다음날 마음을 고쳐 먹고 전화를 걸었다.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라 안내받고는 상세샷을 사진 찍어 올리면서 상태에 대한 부연설명을 달았는데, 그걸 다섯 줄 이상 쓰다 보니, 이렇게 묵혀두는 것이 아닌 게 맞았구나. 꽤나 불편한 마음이었구나. 뭐라도 어떻게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직원은 사진을 받아본 지 한 시간 만에 답변을 보내왔다. 내게 온 제품만 아니라 다른 제품도 상태가 그러하며, 본래 해외에서 올 때부터 검수 포장 과정에서 그렇게 받은 것 같다는 답변을 해왔다. (사진상의 제품 하자는 금방 인정했으며 출고 시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과정을 알아보겠다고 시간을 달라 했다) 그래 그럼 그렇지 어떤 수가 있겠어. 교환해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환불하고 다른 걸 생각할 수도 없는 상태의 나는 (다른 걸 다시 알아보고 구매하기엔 늦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제풀에 주저앉을 유혹에 휩싸였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그리고 정중하게 다시 한번 물었다. 구매 시에 그걸 알았다면 참고했을 것이다. 다른 제품도 구매 시에 이렇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이냐. (그건 안되지 않겠니?) 아니면 다른 조치해주실 수 있는 게 있나요?

상담직원은 좀 시간이 지난 후에 (문자로 주고받은 것이라 고민한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 같은 제품이 일주일 후 입고 예정 중에 있다며 입고되는 제품 또한 그런지 확인 후 재안내드려도 되겠냐 했다. 그리고 선물이라고 하셔서 시간이 촉박하신 부분일까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멘트에 마음이 누그러진 나는 (이렇게 쉽게 잘도 누그러진다) 그럼 일주일간 기다려보겠다며 '그리고 상세한 안내 감사합니다' 와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라며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두 멘트를 쓰면서 조금 고민했다. 이런 걸 보내면 나의 항의가 우스워보이지 않을까. 강경한 스탠스를 일관적으로 보여야 저들도 뭔가 심각성을 인지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1. 시간을 들여 여러 단계별 문제를 체크해 준 점 2.대안을 제시해 준 점 3. 선물의 일정이 곤란해질 수 있음을 고려하여 섬세하게 대답해준 점에서 이 고객센터의 대응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CS는 정말 작은 것에서 갈리는 것임을 다시 느꼈다.


나는 그간 어떤 담화가 '항의' 이냐 '영업'이냐 이런 식으로 애초에 상황별 뉘앙스와 태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익숙해 왔던 것 같다. 누가 갑이냐 누가 을이냐에 따라서 갑은 화만 내고 무례하게 굴며 을은 늘 비굴하게 모든 걸 받아야 하는 게 본래 잔인한 사회이지. 이런 생각에 젖어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고객센터에서 전화받는 사람이 고객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늘 이분들의 감정노동이 화두에 오르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그저 사무적이거나 방어적인 태세를 갖추어 스스로를 보호하기도 한다. 전혀 죄송하지 않은 말투로, 조금의 상황파악 시도조차 하지 않고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경우'낸들 어쩌라고? '에 가깝게 들린다. 물론 그러면 상대방도 조금 화를 나게는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결국 고객센터 직원은 더 큰 소리를 상대하게 될 것이다. 회사에서 나는 이런 악순환을 자주 목격해왔다. 물론 상습적으로 항의하는 블랙컨슈머도 많이 있고, 이것은 대응 방식을 달리해야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 꽤 많은 사람들은 이 사안이 항의할 만한 것인가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문제제기를 하는데, 저렇게 방어적인 태도를 접하게 되면 정말이지 화가 겹으로 난다. 나 역시 그런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기 때문에 이 대응이 고마웠던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비단 고객센터뿐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너무 정해진 스탠스보다는 조금은 열린 태도로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했으니 다른 데서 너도 당해봐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좋은 건 좋다고. 고마운 건 고맙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갑자기 그런 멘트를 꼭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사회적으로 고객센터 직원의 상황(입장)이면 할 수 없는 일인데, 고객인 상황에서라만 실행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제풀에 주저앉지 않고, 할 말이 있으면 꼭 해야지만 실행할 수 있는 일이다)

ps
결국 나는 일주일을 못 기다리고 선물을 전달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직 입고 예정인 제품이 상태가 괜찮은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전화해본 것에 후회는 없다. 우유부단한 나를 경계하여 행동을 취했고, 그의 응대하는 태도가 배려가 있어 기분이 좀 풀렸고, 뭐 결국 박스는 버리는 것이 아닌가.




'Journal & Pic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리기 하여 실행력을 갖춘김에 쓰는 일기  (0) 2022.02.20
오랜만에 교외  (4) 2022.02.14
크라우드웍스 탐방기  (2) 2021.11.12
달리기 두번째 이야기  (0) 2021.10.31
일기는 집어치우고  (5) 2021.09.26
  • BlogIcon 신붕선생 2022.02.14 23:30 신고

    그래, 참. 굳이 꾸역꾸역 참다가. 쏟아낼 땐 또 너무 제대로 할때가 있어.그냥 참지말고 적당히 그리고 꼭 하는게 좋은것 같아. 그럼 이쁜 꽃병생긴거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