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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일상

완벽한 새벽

오늘 아기는 새벽 4시반에 깼다. 야간 출근한 남편은 오늘 당직이라 밤을 새고 새벽 5시에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수유를 마치고 나니 5시가 좀 넘었다. 아기를 토닥이며 다시 침대에 뉘였다. 몇 주전만 해도 5시가 좀 지나면 어슴푸레 밝아졌는데 해가 부쩍 짧아졌다. 아직 컴컴한 실내에서 거실 스탠드를 끌까말까 망설였다. 곧 해가 뜰 것이다.

등록된 차량이 주차장에 들어왔다는 멘트가 월패드에서 조그맣게 들렸다. 리모콘을 들어 TV를 켰다. 오늘은 US OPEN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다. 오늘 조코비치의 캘린더 그랜드슬램이 결정될 것이다. 일년에 네번 열리는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그는 올해 세 경기를 모두 이기고 마지막 한 대회 결승만 남겨놓았다. 누가 이겨도 기록적인 우승이고 누가 이길지 예상되지 않을만큼 최고조에 오른 두 선수이므로 흥미진진한 경기가 될 것이다.

현관문이 조용히 열리고 남편이 들어왔다. 아기가 깰까 소리없이 반가운 눈 인사를 나눴다. 대개 새벽 5시엔 자고 있기 마련이었으니 이 시간에 이렇게 둘이 조우한 것은 처음이다. 피곤한 시간이었지만 이대로 자기엔 너무 아까웠다. 경기는 메드베데프의 브레이크로 시작했다. 최상의 기량으로 거침없이 랠리를 이어가는 폼이 눈을 뗄 수 없을만큼 수준높은 경기였다.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나는 수유를 하느라, 남편은 일을 하고 오느라 우리 둘다 배가 고팠다. 뭘 차려먹기에는 새벽녘이라 부담이 되었다. 냉장고를 뒤져 며칠전 사둔 연두부를 찾아냈다. 두부를 먹기 좋게 자르고 간장 양념을 만들어 모닝두부 플레이트를 만들었다. 각자의 두부접시를 한 손에 들고 테니스 중계를 보기 시작했다.



창문 밖으로 날이 슬슬 밝아온다. 월요일 아침이다. 새벽 여섯시인데 강변북로에 벌써 차가 심하게 막힌다. 가다 서다 하는 차들을 내려다보며 왠지 모를 만족감을 느꼈다. 지금 우리는 일근하는 저들과 다른 시계로 살고 있지만 이 패턴이 나쁘지 않다. 이런 종류의 여유는 또 처음인데, 하나하나 구성품이 완벽하다.

안방 침대에 뉘여놓은 아기가 잠에서 깨서 울었다. 벌써 다시 먹을 시간이다. 아기를 데려와 수유를 하면서 셋이 같이 TV 앞에 앉았다. 올해 세번째 그랜드슬램이었던 윔블던은 7월 중순에 끝나는 일정이었다. 출산 예정일이 겹쳐 혹시나 그 때 아기가 나올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지. 예정일을 꽉채우고 나온 아기 덕에 셋이 보는 테니스는 잠시 미뤄두었는데, 바로 오늘이 그 때인 것 같다.
행복감이 스물스물 밀려와 속으로 혼자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이 기분을 기념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 ps
21년 US OPEN 우승자는 메드베데프가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3:0 스코어였지만 빨리 끝나 아쉽다기보다는 압도적인 경기내용과 패기로 이뤄낸 결과를 라이브로 감상한 것이 감동이었다. 더불어 경기 종료 직전 마지막 쉬는시간에 패배를 직감한 조코비치의 눈물과 관중들에 호응하며 잠시 비춘 뭉클한 표정도 인상적이었다. 처음으로 그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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