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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제 3의 인물

이름과 태명

한이의 태명은 순무다🫜

1. 한이가 생긴 후 율이에게 처음 소식을 전할때 동생의 이름을 지어달라 부탁했었다. ”너는 태명이 두부였단다“라고 예시를 들어줬더니 그럼 동생은 순두부로 하겠다고 해서… 그건 곤란하니 이리저리 고민하다 결이 비슷한 순무가 되었다. 이름에 붙인 의미는 ’순하게 무럭무럭 자라라‘. 공교롭게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인 강화도 특산품이라 더 좋았다.

2. 태명은 곧 입에 찰떡같이 붙었다. 순 과 무(순음 ㅁ,ㅂ)의 발음조합이라니 더이상 부드러울 수 없었다. 이름이 순무여서 그런지 아기도 매우 순한 느낌이었다. 임신시절은 물론 조리원에서나 집에 온 초반에도 아기는 입 벙긋 소리내지도 않고 조용하게 잠을 잘 잤다. 나는 부를수록 순무라는 태명이 마음에 들었다. 순무야~하고 부를때는 나도 함께 보송보송해지는 기분이었다. ’열무(열달동안 무럭무럭) ‘라는 태명은 많은데 순무는 처음 듣는다며 사람들이 재밌다 귀엽다해주었고, 우리도 이름은 역시 흔하지 않아야 각인도 되고 좋다면서 자찬했다.

3. 태명만큼 마음에 드는 이름짓기는 어려웠다. 첫째가 외자이다보니 둘째도 외자로 짓고 싶었다. 남들은 둘째 이름이 더 쉽다는데 우리는 처음보다 더 오래걸렸다. 첫째처럼 단어 자체로 의미가 완성되는 이름을 짓고 싶었지만 ’조‘로 시작하는 적당한 두글자 단어를 찾는 건 너무나 어려웠다. 주로 이르거나 (이를조) 도와주거나 (도울조) 하는 뉘앙스가 많아 곤란했다. 할아버지가 ’조예‘를 추천했는데 그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적절한 이름이었으나 정작 부르기에 쉽지 않았다. 예예~

4. 매일 밤 율이와 남편과 잠자리에 함께 누워 둘째 이름을 고심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한 후보는 조단, 조찬, 조연, 조설 등. 우리 둘 다 마음에 들어야 했고 놀릴만한 이름은 뺐다. 특히 여러형태로 불리는 상황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O아, O이야, O씨, O양, O님, O이 언니, O선생님, O이 할머니. 태명도 만들어 부르는 거지만 한평생 부르는 정식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대단했다.

5. 이름은 출산으로 입원해 있을 때 바로 지어서 구청에 신고를 했다. 퇴원하면서 원무과에 출생신고서를 제출하고 아기 이름으로 된 진료비 계산서를 받았다. 그때 처음 보았다. 종이에 적힌 아기의 이름. 글씨로 인쇄된 이름을 보는 기분은 또 색달랐다.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이거 괜찮은 건가?“ 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6. 태명으로 부르다가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할 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두부와 율이는 둘다 부드러운 느낌이라 큰 이질감이 없었는데, 순무는 한이로 바꿔부를 때부터 조금 큰 장벽을 넘는 느낌이었다. 순무라고 할땐 순한 느낌이었는데 한이라고 하니 갑자기 좀 세지는 느낌? 외치는 느낌? 한글로 ’하나‘라는 의미도 동시에 연상되었기 때문에 자아가 강한, 본인을 드러내고 싶은 뉘앙스를 주었다. 이대로 괜찮은가? 태명에 좋은 기운(?)을 다 끌어다 쓴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물론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서 혼자 일어난 일이다)

7. 조리원까지 끝내고 집에 와서 비로소 순무와 한이를 섞어 부르기 시작했다. 산후도우미가 처음으로 ’한이엄마‘라고 불렀는데 ’억?나인가?‘ 잠시 유체이탈 할 정도로 어색했다. 그 무렵부터였나 한이가 천둥과 같은 소리로 울기 시작한 것이. 한이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율이도 목청이 좋았는데 한이는 지속력도 좋았다. 너무 크게 울어대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순무야 순무야 하며 달래보기도 했다. (딱히 먹히지는 않았다)

8. 익숙해지는 게 답이다. 이름은 다른 잡생각없이 고유명사로 다가올만큼 익숙해지는 것이 답이었다.  다행히도 율이 덕분에 수월하게 익숙해졌다.

”야! 조한! 내꺼에 침 묻히지 마!“

PS. 둘째가 진통이 걸려 수술예정일보다 3일 먼저 태어났다. 정책 초기 민생회복쿠폰이라는 걸 발급하던 시기였다. 마침 그달 그날로부터 3일후까지 출생신고를 한 아기는 국민1인으로 쳐서 15만원의 소비쿠폰을 받았다. 예정일에 출산했다면 출산일에 출생신고를 할 수는 없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던 것. 우리의 이름짓기 고민이 막판 가속화 된 원인이다.  보너스를 물고 태어난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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