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에 다니는 정형외과에 담당하시는 원장님이 꽤 상냥하신 분이다. 동네 병원이라 손님도 많고 지칠만도 한데 늘 웃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에 답변을 자세히 해주신다. 한달 넘게 다니다보니 이제 안면이 어느정도 있어 반갑게 아는척도 해주시곤 하는데, 갈수록 통증은 비슷하고 할말은 점점 떨어지는 느낌?
"오 오늘보니 살이 좀 빠지신 것 같아요. "
"아뇨, 비슷한데요."
"그럼 몸이 좀 붓는 편인가요? 저도 좀 그래서요. "
얼굴이 좋아졌다는 뜻이다. 매직워드는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누가 살빠졌다는데 싫어하겠소만은 난 왜인지 그런 서두가 별로다. 뭐랄까 좀 가벼워보인다고 해야되나. 얼마 안되는 진료시간에 쓸데없는 시간을 잡아먹는게 싫은 건가. 그러고 보면 그런 말은 진심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는 건가.
처음엔 질문에 답을 상세히 해주시는 정형외과 선생님이라 좋았는데(보통은 진료시간이 짧고 형식적인 경우가 많아서) 어느 순간부터 너무 잦은 스몰토크에 얼굴이 굳어지는 나를 발견한다. 동네 병원에 통증 관리해줄만한 의사가 있는 건 나쁜 일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얼굴을 굳힐 필요가 있나.
2. 최근에 다니는 운동센터에 담당 선생님도 꽤 상냥하신 편이다. 눕고 엎드리고 저질 코어로 안쓰럽게 운동하는 중이라 토크 상황이 좀 여의치 않긴 하지만, 가끔 힘이 안드는 동작을 할 때나 얼굴 마사지 하는 위치처럼 베드에 바로 누운 내 머리 위에서 가볍게 목 운동을 할 때 말을 걸 때가 있다.
내가 아무래도 '산후 골반 교정' 목적으로 방문했다보니 "아기는 몇개월인가요? 잠은 잘 자나요? " 라고 가끔 물으신다. 흔한 스몰토크라고 판단한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네 뭐 잘 자요."
근데 갈 때마다 몇 번씩 항상 잘 자는지를 묻는 것이 담당 물리치료사로서 내 수면의 질을 염려하시는 것인지 궁금할 무렵. "아기는 그맘때 얼마나 자나요? 사실 제 아내가 곧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요."
아.. 그러시구나.
갑자기 훅 들어왔다.
"세시간마다 우유를 줘야된다면서요? 그럼 밤에도 그런거죠? 아.. 잠을 세시간마다.... 휴..진짜 걱정이네요."
갑자기 빅토크가 되었다.
이 남자에겐 무엇보다 실존적인 문제다.
그 다음 수업시간에 나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작은 바나나 치발기를 그에게 선물했는데, 그는 갑자기 영문모를 얼굴이 되어 날 쳐다봤다. "그냥 아기 꺼에요."
출산을 앞두고 있다 말했을 뿐인데 왜 그런것까지 선물하는지 그는 몰랐겠지만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부디 아기가 순하게 잘 자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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