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친한 언니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언니는 내게 안부를 물으며 본인은 요새 괴로운 것도 아니지만 행복하지도 않은 것 같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정신적 육체적 기능은 떨어지는 것 같은데 이뤄놓은 게 없는 것 같기 때문이란다.
새해를 맞으며 앞자리 나이가 바뀐 나 역시 언니와 비슷한 생각이었기 때문에 적잖이 공감했다. 그리고 언니의 입장이 되어보면 더더욱 그럴 것 같았다. 특히 결혼과 아이, 독립된 집 그리고 도무지 보람차지 않은 직업적 성취 부분에서였다.
10년 전 회사에서 만난 언니는 인원이 백 명씩 되는 부서에 3년간 함께 있었던 것 말고 나와는 같은 팀도 아니고 겹치는 업무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부서를 떠나고 거리가 멀어도 일 년에 한두어 번 꼭 만났고 만나면 누구에게 선뜻 하지 않는 내밀한 이야기도 쉽게 터놓고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건 많은 사람 사이에서도 우리가 서로를 잘 알아본 덕분이다.
우리는 가끔 책도 나눠 읽고 종교, 꽃이나 여행, 글, 사람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은 건 과학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과학에 대한 작은 호기심 정도였지만 언니는 우주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를 떠올리면 행성이나 중력파 이야기를 하며 설렘 가득해하던 표정이 따라온다.
작년에 나는 아이를 가졌다. 결혼하고 나서도 미혼인 언니와 정서적 교류를 잘 해왔지만 언니와 내가 갈라진 것은 이 지점이 되었다. 난 내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내가 그 길을 걸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자에게 이것은 숙제와 같은 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기쁨에 취해있을 필요는 없다. 나는 이 길을 택했을 뿐이고, 인생에서 중요한 건 어떤 길을 택했는가에 못지않게 그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난 작년에 인생의 숙제를 해치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골목으로 이제 막 들어선 것뿐이고, 그리고 우리 둘은 공통적으로 마지막 숙제를 풀어야 할 일이 남았다.
“아 맞아! 난 며칠전에 제임스 웹이 발사되는 걸 보고.. 좀 슬펐어. 저 일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있었더라면! “
아이의 안부와 생활을 묻고 즐거이 듣던 언니는 대화 말미에 몇 주 전 우주선을 쏘아올린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일원이 되었으면 얼마나 보람찼을까 말했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싶은 꿈이라니. 언니의 꿈은 거대한 것 같으면서도 순수했다. 우리 둘 다 회사에서 스스로의 일이 의미가 있는지 남몰래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한번쯤 나눌만한, 어울릴법한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그 꿈은 좀 부러웠다.
어떻게 된 것이 나는 일에 대한 고민이 십년이 넘도록 똑같이 제자리인지 좀 슬프지만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해야 될 때인 듯 싶다. 일 년이 넘게 쉬고 있다 보니 이제 조금 무언가 조그맣게 차오르는 느낌이 드는데, 더 깊게 고민하고 구체화시켜봐야겠다.
일단 그 책부터 사야지 '불쉿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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