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도 기술이라면 기본이란 게 있을텐데 가끔 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오늘따라 칼국수가 먹고 싶어서 식자재장에 쓰고 넣어뒀던 칼국수면을 꺼내 재료를 준비했다. 마침 감자, 호박, 당근, 양파가 모두 집에 있어서 그것들도 적당히 썰어 준비했다.
오늘 인터넷으로 찾은 레시피에는 멸치육수의 깔끔한 맛을 위해 감자와 칼국수 면을 물에 헹구도록 설명해놓았더랬다. 썬 감자는 물에 담궈 놓았고, 면은 넣기 전에 채에 받쳐서 물에 가볍게 헹구라길래 미리 준비한답시고 꺼내놓은 면 위에 수돗물을 틀었는데 느낌이 싸했다.
다시 읽어보니 면은 ‘냄비에 넣기 직전에 헹구’라고 되어있다. 난 이미 면을 담궜고.. 물 묻은 면은 들러붙기 시작했다.
냄비 상황은 다시팩이 이제 막 끓고 있는 수준. 육수를 10분정도 내고, 감자 넣고 끓어오르고, 당근 양파 호박 넣고 끓어오르는 단계가 필요하건만 면은 급속도로 굳어져간다. 하는수없이 다시팩과 감자는 거의 동시에 끓이다시피 하고 나머지 재료도 충분히 익기 전에 후닥닥 면을 투하했다. 하지만 이미 블럭이 되어버린 면. 한 여섯블럭 정도 되었나보다.
뜨거운 물에서 많이 휘저으면 그래도 풀리겠지 생각한 건 안이한 예상이었다. 두꺼운 블럭면은 잘 구부려지지조차 않았고, 면이 들어가자 물은 더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운데를 휘어서 겨우 구겨넣고 부족한대로 나무젓가락으로 면 사이사이를 갈라보았지만 면은 붙은 채로 빠르게 익어갔다. 이럴거면 수제비가 낫겠어..
조급한 마음으로 집게와 스패출러와 기타 등등 주방도구를 총동원해봤는데 가장 마지막에는 왼손엔 집게 오른손엔 포크를 들었다.
집게로 면을 집고, 오른손 포크로 면을 빗었다. 열심히 면 빗느라 물이 다 쪼그라들도록 간도 못하고 있다가 끄기 직전에야 간장 액젓 마늘 소금 좀 넣고는 한입 맛을 보았는데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면에 물 붓고 혼자 소스라칠때부터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남편은 칼국수를 먹으며 말했다. 아마 그 레시피는 생면으로 만든 게 아니겠냐고.
어쩐지 사진 속 면은 곡선이더라….
'Journal & Pic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래를 사는 사람 (5) | 2022.08.25 |
---|---|
오랜만에 무서울 것 같은 소설 (4) | 2022.08.10 |
집중이 안되는 날들 (2) | 2022.07.05 |
앞서 온 사람 (0) | 2022.06.21 |
작은 세상, 제발 작은 것부터 잘해봅시다. (5) | 2022.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