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잠을 자지 않아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 벌써 저녁 6시가 넘어가는 무렵 골목어귀의 라오삐약을 지나가는데 유모차를 지니고도 바깥에 앉아 제법 먹을만한 좌석 두개가 눈에 들어왔다. 안그래도 며칠전부터 소고기 쌀국수가 땡겼는데 마침 자리도 비어있고 저녁도 해결해야 하니 아기가 잠이들면 여기서 이걸 후딱 먹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잠드는 데 예상보다 오래걸려 골목을 몇번 반복해서 걸어 40분쯤 지났을때라야 식당으로 향할 수 있었다. 반쯤 걸어왔을 때 내 옆을 빠르게 지나쳐 한 여자가 걸어갔다. 여자의 걸음이 조금 특이한 느낌이어서 나도 모르게 뒤에서 쳐다보게 되었던 것 같다. 곧 나와 비슷하게 유모차를 끌고 기다리고 있던 다른 여자와 만나 반갑게 인사하곤 내 조금 앞에서 같은 방향으로 걸었는데 나도 그 오미터 쯤 뒤에서 별 생각 없이 쭐래쭐래 따라 걸었다. 식당이 가까워오자 어깨 너머로 빈자리가 보였고 나는 유모차에 잠든 아기를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화들짝 놀랐는데 내 바로 앞에서 그 두 사람이 식당의 하나 남은 빈자리에 앉아버렸기 때문이다. 원래도 웨이팅이 많은 식당이고 내 자리를 맡아놓은 것도 아니지만, 아무런 긴장을 하고 있지 않다가 공교롭게 겹친 상황에 눈앞에서 자리를 놓쳐버리자 눈뜨고 코베인 것처럼 황당했다. 나도 모르게 가게 문앞에 서서 시위라도 하듯 두팔을 떨어트리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봤자 어차피 소용없고 나만 우스워진다고 생각이 들었고, 저들보다 빨리 주문이라도 넣으려고 식당에 들어가 포장주문해달라고 말했더니 나보다 더 지친 표정의 직원에게서 지금 용기가 없어 포장이 안된다고 퇴짜를 맞았다.
언젠가부터 나보다 앞에 속도가 느린 차와 사람을 ‘길막’이라고 쉽게 불평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 치거나 대사 한번 뱉는 식의 화풀이로 쿨한 척 능숙한 척 태도를 취했지만, 실은 나보다 앞서 온 사람들에게 당연히 지켜야 하는 예의와 심리적 여유 모두를 잃어버린 모습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보다 앞서 무언가를 가져간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부터 원망의 화살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아쉬울 수 있고 눈앞에서 그렇게 되었다면 더더욱 안타깝겠지만, 그것은 내가 뒷순서일 뿐이지 원망도 몰래 째려보는 것도 맞지 않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억울할 필요도 없지만 억울하더라도 앞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안된다. 그런 정도의 품성의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식당에 가겠다고 생각한 내 마음이, 나의 시간순서상 그 두 사람보다 먼저였기 때문에 그래서 속상한 것인가. 도대체 왜 그 앞에서 서서 난 시위를 했나. 그렇지만 이게 쌀국수 한그릇이 아니라 다른 귀한 물건이라도 나는 같은 마음일 수 있을까. 중한 의료서비스나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같은 마음일 수 있을까? 배정이 선착순이 아닌 임의라면? 내게 그 권리가 있어도 부끄럽지 않게 공정할 수 있을까.
부쩍 양보와 희생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 내가 누구가 이기적이지 않다는 말도 섣불리 할 수 없다. 황당한 표정으로 시위하듯 서 있던 그 순간에 그 두 여자가 나를 보고 조금 놀라기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없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이 부끄러웠고 그런 행동은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최선일 뿐이다.
'Journal & Pic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리의 기본 (4) | 2022.07.07 |
---|---|
집중이 안되는 날들 (2) | 2022.07.05 |
작은 세상, 제발 작은 것부터 잘해봅시다. (5) | 2022.06.13 |
글쓰기 근황 (0) | 2022.05.28 |
아펠 운동센터 운동 후기 (0) | 2022.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