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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일상

새해를 시작하며



* 오늘은 연남동 집이 이사를 하는 날이다. 엊그제 연휴 주말에 짐을 좀 옮기러 다녀왔다.

연남동 집 이사이야기는 나온지 쫌 됐지만 막상 이사짐을 정리하잔 전화를 받고는 허전함을 견딜수 없어 엄마에게 괜시리 짜증을 냈었다. 멀쩡한 상수 신혼집이 있는데도, 갑자기 서울 한가운데 내 발 디딜곳 하나 없어진 기분. 내 정체성이 없어지는 기분. 이것이 엄마에게 낼 짜증이 아니고 , 오빠의 결혼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라는 걸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얘기가 나왔으니 이제 몇주안에 실제로 벌어질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슬퍼서 그날 저녁에 퉁퉁 거리다 못해 울기 직전이었다

내가 슬퍼하는 이유는 25년간 살아온 내 정서적 고향이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일까. 그리고 국민학교때부터 써온 집주소도. 연남동 그 그리운 동이름도. 그 익숙한 풍경. 주변의 소박한 가게들. 사통발달했지만 약간씩 먼 교통. 그 골목. 그 방? 아냐 최소한 그 공간은 아닐 거다.춥고 벌레많은 공간이 왜.


* 집에서 가져온 것중에 큰 박스에 넣어둔 편지 모음과 쪽지 모음이있어 그걸 옮겨담다가 몇개를 꺼내 읽어봤다. 새로 박스 넣기가 좁아서 몇개는 버리겠노라 읽었는데 그 시절이 새삼스러우면서도 참 어렸었다.
당시엔 세상의 전부일 것 같은 것들이 지금 보면 정말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부질없는 여학생들의 시간 보내기였다니, 십년뒤 나는 또 지금의 어떤걸 얼마나 쓰잘데 없었나 후회할지

하루에도 몇번씩 고이접어 편지를 쓰던 친구들이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 그 내용은 얼마나 또 형식적인지. 마냥 중학교 고등학교 수준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시간과 종이와 펜이 아까울 지경이니. 버릴수 없다고 안버리고 지니고 있는것도 다 나의 욕심이다.

그것으로 나는 무슨 위로를 얻었고 무슨 생각을 했나
내가 수없이 적어놓은 메모들도 발전없이 사건을 나열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것이 쌓여서 무엇이라도 이뤄낸 것인가 ?

* 집에 있는 책도 다 버릴수밖에 없어 많이 갖다 팔았다. 알라딘서 거의 30권을 팔고 48900원을 받아 돼지갈비를 사먹었다. 그동안 열심히 모아놓은 씨디와 테잎도 다 버렸다. 그렇게 많이 모은 CD를 중고도 안받아준다니 너무 새삼스럽다. 불과 10년만에 그렇게 무가치한 게 되버리나.
테잎도 씨디도 씨디피도 똑딱이 카메라도 무선칩이 큰 로지텍 무선마우스도 버릴까 말까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빠른 변화의 시대에 살고있음을 느끼게 했다.

* 연말과 연초는 버리고 정리하는 시기이다.
인사이동도있고 , 업무도 다소간 바뀌었고 , 해도 바뀌고, 연남동 집까지 정리하니 정말 인생의 한 막을 정리하는 기분이다. 결혼전후에 정신 없이 상수생활을 시작한 것에 비하면 1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이제 진정한 시작이 되었다고 할까

무엇인가를 갖고 버리고 한다는 데에 난 그간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해왔던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건 그걸 갖고 있는것만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임을.
좋은 글이든 좋은 사진이든 좋은 물건이든 계속해서 쓰고 보고 즐거워하지 않고 넣어두기만 해서는 안 가지고 있느니만 못함을.

이제 지금 쓰지 않고 보지 않는 넣어둔 모든 것을
앞으로는 더 자주 보고 사용하며, 느끼며 현재를 살겠다. 추억형에서 벗어나겠다

새해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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