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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일상

드로잉 원데이클래스 - 아크릴화 그리기

휴직하고 하고 싶었던 취미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

재작년에는 물감을 사서 수채화를 끄적거려봤고, 작년에는 펜을 사서 어반드로잉을 해봤는데 둘다 그럭저럭 재미는 있었으나 너무나 혼자서 노하우도 없이 고군분투하는 것. 그래서 휴직 후 몇달의 시간이 나면 원데이클래스나 3-4번 초급반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집근처에도 클래스가 여럿 있어서, 가까운 곳에 적당히 예약을 했다. 신청 후 무엇을 준비해야하냐 물었더니 스케치를 미리 해준다고 그릴 그림을 보내달라고 한다. 

무슨 그림을 그릴지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그때부터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는데, 생각을 계속하다보니 문득 무엇을 그릴지를 고르는 것은 무슨 그림을 구매하느냐 결정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었다. 


펜과 스케치북이 있어 드로잉만 하면 되는 작년 나의 그림들도 생각해보면 어떤 장면을 그려야겠다는 것은 약간 영감처럼 파바밧하고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번쯤 해보았다가 안된다고 해도 그냥 중단하면 되는 것이므로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클래스를 앞두고 뭔가 이미지를 고르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인생작 같은 걸 골라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게 있었다.


한번에 35,000짜리 유료 클래스 라서 그런 건가요? 그냥 이것도 한번 해본다(안됨 말고) 하면 더 쉽긴 할텐데 말이지.

결정장애자의 고민의 흔적 ㅋㅋㅋㅋㅋ

몇개의 이미지를 겨우 추리고 나니, 두개의 축으로 나뉘어졌다. 나에게 개인적 의미가 있는 사물 혹은 장소를 그리느냐. 아니면 그냥 키치한 그림을 구매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이미지를 고르느냐. 


사실 지금같은 원데이는 어떤 그림이라도 모방을 해도 상관 없을만큼 아주 생기초중의 생기초인데, 왜냐면 모방한다고 원작의 퀄리티가 절대 나오지 않는 실력 수준이기 때문이다. ㅎㅎㅎ


사실 그래서 그냥 수업을 참여하는 나같은 생초보들에게 아크릴화의 특성을 고려하여 강의 중 몇개의 샘플을 줘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예상하고 있어 그림을 고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께 물어본 결과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그리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온다고 하니... 참으로 나는 왜 이리 다른 이들과 달리 어려운 것인가. 읭?

수업은 오후 3시30분~6시였다. 3시 20분쯤 맞춰서 도착했다.

화실은 지하일층이었고 작았지만 활기가 넘치는 공간이었다. 나 말고도 네다섯명 정도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지금 이 타임 뿐 아니라 여러 수강생들이 오랜시간동안 공들여 그림을 그려온 것이 분명한 생동감이 공간 여러군데서 느껴졌다.  

앞치마를 갈아입고 내 자리로 준비된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정한 그림이 이미 스케치된 캔버스와 보고 그릴 수 있도록 크게 프린트된 사진이 걸려 있어서 벌써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스케치는 원데이클래스에서 혹시나 예정 시간 이상으로 오래걸릴 수 있는 문제를 줄이려고, 선생님께서 필요시에 미리 해주시는 모양이었다. 어려운 이미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정도로 간결하게 구도를 잡아 그리는 것도 내게는 꽤나 오래걸리는 일인 걸 잘 알고 있다 ㅎㅎ 

아크릴화로 사진속 벽돌을 옮기는 것은 (아마도 초보자에게) 좀 어렵다고 하여, 그라데이션으로 처리하였다. 어반드로잉이었다면 노가다였지만 벽돌을 구불구불 그려 채우면서 낄낄댔을텐데 -

아크릴물감을 짜서, 색을 만들어주는 것(조색)은 선생님의 몫이였다. 이것 역시 시간을 줄이기 위한 요소라고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색깔이 딱 있으면 모르지만, 비슷한 느낌의 색을 섞어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므로(나중에 채색한 물감이 부족하여 같은 색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특히나 그렇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취미로서 그림을 그리는 희열 중 하나는 색깔을 마음대로 골라 물감을 뿌직하고 짜낼 때, 그리고 그 색깔을 선명하게 캔버스에 옮길 때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물감에 손도 대지 못하는 이 클래스의 상황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림으로 그리겠다고 선정한 이미지는 지난 헝가리 여행 때 내가 찍어온 사진인데, 인화본이 있어서 사진을 들고 갔더랬다. 선생님이 인스타 dm으로 받아 프린트해놓은 종이보다 사진 원본의 색감이 훨씬 선명하여, 나중에는 인화사진을 들고 좀더 비슷한 색감으로 조색해주셨다. 

중간중간 다른 수강생을 봐주러간 선생님을 기다리며 찍어본 화실의 풍경, 큼지막한 캔버스에 담겨진 저 뒷모습 여자가 자꾸 시선 강탈한다. 그러고보니 테이블의 미니이젤은 새언니가 인테리어 책 전시용으로 내게 사준 이젤과 같은 것 같은데, 이거 잘만하면 집에서 요렇게 느낌있게 그림 그리기도 가능할 듯? ㅎㅎㅎ

원데이클래스는 아크릴화 말고 유화와 오일파스텔도 있었는데 스케줄상 신청하지 못했지만, 이날 가서 보니 유화작품도 꽤나 많이 있었다. (두꺼운 물감을 말리느라 화실에 맡겨놓고 나중에 찾아가는 듯?) 물감을 푹푹퍼서 두께 있게 터프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꽤 멋있어서 다음에 그림을 그리게 되면 유화, 그중에서도 나이프화를 그려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하늘 구름 산 파도 들판 등을 표현한 작품들이 특히 멋졌다. 

슬슬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나의 그림.

단순한 그림이지만 선이 겹치지 않게 꼼꼼히 마무리해야되는 부분이 많아 선생님이 바톤 터치 받은 후 뒷부분 수정작업에 시간이 꽤 걸렸다.

마지막엔 화실에 나만 남았는데 , 선생님이 내 그림을 꼼꼼히 수정작업을 하시던 중 원장님 (독촉)전화를 받고는 마감과 뒷정리 때문에 마음이 바빠진 모양인지 벌떡 일어나 갑자기 마무리를 하자고 했다. 네??

내가 진도가 딱히 느렸던 것도 아니고, 여럿을 돌아가며 봐주는 강의인데다(=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본인의 수정작업만에도 거의 4-50분이 걸렸는데, 아무리 원데이클래스라도 어느정도 마무리는 지어주셨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말이죠(시간 배정을 포함하여) 막판에 갑자기 흐지부지 넘기고 끝낸 이 부분은 좀 많이 아쉬웠다. 


결국 가장 중요한 OPERA 부분은 시간 부족으로 못 그리고 나왔다는 비극.

마음만 급하면 여태껏 재밌게 그려놓고 잘된밥에 코빠트리는 격이 될까봐, 기분은 좀 상했지만 군말하지 않고 일어섰다.

OPERA글씨는 붓으로 그리기 난이도가 높으니, 붉은 계열의 펜으로 쓰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을 주셔서 내가 알아서 집에가서 마무리하기로 - 

그리고 다음날 합정 교보에 들러서 PERMANENT PEN을 하나 샀다. 예전에 드로잉때 썼던 피그먼트 계열로 사려고 했는데, 최대한 비슷한 색깔과 펜 굵기를 고르다보니 요놈 edding으로, 한자루 3천원.

그리하여 완성된 나의 그림!! 사실 OPERA 글씨 주위 타일에 자잘한 문양들도 있는데, 망할까봐 그냥 테두리까지만 둘렀다. 우측하단에 작게 시그니처도 ㅎㅎㅎ

근데 쿨하고 키치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원래 의도보다, 뭔가 예상한 것보다 색감이 누리끼리하고 뭘 표현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ㅋㅋㅋㅋㅋ 이런 

보고 그린 원본 사진은 이것이다. "원본사진보다 느낌 있게 그릴것 아니면 선정에서 제외하자'가 나의 목표였는데, 목표달성은 실패한듯 (= 아끼는 사진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보자) 

 

오늘 원데이 클래스를 하고 느낀 것  - 

1. 결국 오늘의 원데이 클래스는 내가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서 즐거운 것이라기보다는 (스케치 및 프레이밍도 내것이 아니고, 색깔을 고르는 것, 마무리를 하는 것,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도 내것이 아니지만) 잘 그린 그림을 소유하게 됨으로서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래서 결국 어렸을 때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그림 그리는 전통적인 공식에 맞춰, 원근법에 맞는 구도와 최대한 비슷한 색깔과 명암을 살리면서 '잘못된 그림을 그리지 않도록 해야하는 (= 잘 그리지 못하면 스트레스 받는) '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물론 퀄리티가 좋은 그림을 갖게되면 기분이 좋긴 하겠지만, 그냥 순수하게 내 마음대로 미술을 즐기는 느낌은 좀 덜했다는 이야기다. 

2. 재작년 보라카이에서 묵었던 부띠크 호텔에 그림그리기 클래스가 있어서 아크릴화를 한번 그렸던 적이 있다. 그때 내게 아크릴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그건 내가 여태껏 알던 그림그리기(=어려움)와 매우 다른 신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말도 잘 알아듣기 어려운 외국인 미술 선생님은 내가 어떤 붓질을 해도 그레잇, 엑설런트, 굿, 나이스 4종 세트로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실제로 스케치도 없이 그린 내생에 첫 아크릴화는 꽤나 괜찮은 마무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땐 아크릴화의 그 특유의 특성. 물감이 거의 없이 캔버스에 뻑뻑하게 그리고, 덧칠을 하면 바탕색이 어떻든, 어떻게 망했든 새로운 색으로 덮어서 커버가 가능한 것이 너무나 신기했었다. 가장 멀게 보이는 배경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물까지 겹겹이 레이어만 잘 생각하면서 그리면 스케치 없이도 망할 걱정 없이 신나게 그렸던 것이 특징이었던 것. (설명이 어려우면, 밥아저씨의 그림을 그립시다의 스케치 없는 마술같은 덧칠을 생각해보면 조금 비슷하다)


근데 오늘의 이 수업은 그런 아크릴화의 특성보다도, 포스터물감으로 선을 안삐져나가게 잘 그리기 에 가깝지 않았나 싶어서 그것이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아크릴화의 매력을 담기에 조금 부족해보였다. 물론 나의 그림 선정 때문일 가능성도 높지만. ㅎㅎㅎ 이것은 수채화로 그려도 비슷하게 그리게 되었을 듯 싶고. 아크릴화 원데이클래스이면 그것에 더 걸맞는 이미지를 고르는 법도 같이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의견.!

  
이상 드로잉 원데이클래스 체험 수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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