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 몇이 자리를 한번에 비웠다. 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조용하고 일 할만 하였다. 영업점에서 물어보는 질문들에 대응하여 차분히 생각하고 이곳저곳 물어보기도 하고 대답을 정리할 수 있었고 훨씬 생산적으로 일할수 있었다. 물론 무기한 이런 상황이면 이렇지만은 않겠지. 내게도 관리자와 책임자의 역할이 추가로 부여될 것이다. 원래 그들이 있다가 지금만 잠시 없는 시간이라 편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그런 걸 접어두고도 귀마개따위 생각나지 않는 오랜만에 너무도 정말 일 할만한 날이었다. 피신을 떠나지 않아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다.
전에 친구와 함께 만났었던 한 차장님이 휴직을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나 건강으로 인한게 아닌, 퇴직 대신 어쩔수 없이 선택한 자발적 휴직이다. 벌써 경력 20년이 다 된 베테랑 직원이자 외벌이로 성실히 두자녀를 키워왔던 한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회사일에 집중이 안되고 모든 의욕이 사라져 일하기가 어려워 그간 몇달넘게 병원에 다니며 양약과 한약을 먹어보며 노력했음에도 불구, 차도가 없어 결국 내린 선택이라 했다. 그 소식을 전하면서 친구는 그래도 본인은 근근히 잘 버티고 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듣는 내 마음도 씁쓸한건 마찬가지였다. 그간 회사에서 만나고 겪은 이들중 성실히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을 고민을 하고 괴로워하고 심지어 스스로를 깎아먹는데, 반면 세상 염치없는 족속들은 아무 노력도 없는데 고민따윈 하지 않으며, 남들에게 업무는 떠넘기고 가중시키며 회사돈으로 놀고먹으며 다닐 뿐인 것이 씁쓸했다. 그러한 놈들만이 회사엔 드글드글하고, 정작 그들의 구멍을 메워가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만 스트레스를 받고 약을 먹고, 몸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 너무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여왕개미와 일개미 이야기를 언급해하며, 어느 사회나 세계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게 어쩔수 없는 현실이니 "일개미는 일이나 해야지"하는 자조적인 마무리로 농을 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이 일개 작은 회사에서 그 누가 누구에게 여왕개미의 권한을 주었는가. 선진적 자본주의가 부와 권력의 세습같은 단순한 결론으로 귀결되는것이 아닌데, 회사내에서 아니, 작게는 한 부서와 한 지점 내에서의 그러한 일의 심각한 불균등은 그저 타고나고 배양된 각자의 성격과 염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어제 데미안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내면을 다지는 것, 그 목표를 위해 책을 읽고 노력하는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과연 이 간극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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