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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일상

신년음악회

19.01.01

앞에 숫자를 쓰다가 한칸 지웠다. 새로운 숫자를 써야겠네라고 생각하며 켰는데도 손가락이 제맘대로 움직여버린 것이다. 습관이란 이렇게나 놀라운 것이다. 당분간, 몇일동안 , 길면 한달이 다 되도록 익숙치 않아 한칸을 지우게 되겠지. 이 회사가 업무적으로 숫자를 많이 입력하는 자리라 그런지, 머리에서 입력하는 생각보다 한층 빠르게 자동으로 놀려지는 손가락이 이제 익숙해진 기분이다.

오늘은 새해첫날, 뭘하면 새해를 새해답게 보낼수 있을까. 옆분은 출근했고 나는 좀 차분히 정리의 시간을 가질까 생각만 해둔채 오전을 맞았다. 작정하고 몇주전부터 메가박스에서 하는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중계실황을 예매해놓았는데, 처음에는 짝꿍과 같이 가려했는데 오늘부터 시작된 근무지변경으로 신촌7시가 어려울 것 같아 아쉽지만 다른 친구를 물색해 같이 가기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는 예전에 이시내차장님이 나에게 추천해준 것이었다. 해외의 유명 교향악단에서 연례행사로 하는 전통의 신년음악회를 한국의 영화관에서 위성을 통해 실황으로 중계를 해주고, 영화관의 편안한 의자와 훌륭한 사운드로 , 그것도 여럿 모인 관객들과 함께 설레이며 즐길수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중계의 기술적 문제(싱크로가 안맞거나 끊김)같은 걸 우려했었고, 나중에는 실제 악기소리를 듣는게 아닌, 한번 거쳐온 전자적 사운드가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냐 하는 우려를 했다. 그러나 정작 다녀온 후 지금은, 나의 짧은 우려는 오히려 별 문제없었으나, 그것 이상의 예상치못한 상황들이 충격의 반전을 선사했다는 사실.


1. 기본적으로 영화관 스크린으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TV프로그램에서 공연실황을 보여주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반대로 말하면 실제 상황이라는 느낌은 조금 덜 났고(현장감이 별로 없었음) , 그냥 EBS에서 하는 녹화방송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서 생각보다 ‘라이브로 업'이 되지는 않았다.

2. 예전에 한국시리즈나 월드컵 결승전 같은 것을 실제 장소가 아닌 타 경기장(경기장은 텅 비어있고 전광판으로 함께 보는) 이나 영화관에서 함께 모여 응원하는 것에 대해 들은적이 있었는데 , 그때 나는 나도한번 해보고싶다는 호기심보다도 의아한 기분이었다. 실제 공연(경기)장소가 아닌 곳에서, 내손의 막대풍선을 부딪혀가며 화면너머의 영상을 함께 보는 기분이란, 사이버 세상에 다같이 접속하는 매트리스속 네오가 되는 기분이라 (그냥 나혼자만 그런 기분일지라도 아무튼 내겐) 이상했다고 할까.
그리고 경기장이나 영화관처럼 뭔가 입장하여 자리에 앉는 방식으로 모인다는 것 자체가, 뭔가 '거리응원'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뭉쳐서 응원하는 것과는 다르게 좀 이질적이고 위화감이 드는 기분? 이미 세상엔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아무튼 나에게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어서,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 같은데, 이 특수한 상황속에서 겪었던 대표적인 위화감이란 영상을 보며 '박수'를 칠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문제같은 것이 있다. 영상 초반 안내문구에 그런말이 나왔다. 공연을 즐기시면서 원할땐 마음껏 ‘박수'를 치시면 된다고. 이 신년음악회는 나름 유명하고 전통이 있는 음악회인데다, 메가박스에서 매년 꾸준히 해오기도 했고, 매니아도 적잖이 있는 모양이어서 처음부터 박수를 일부러 세게 (주변인들의 동화를 위하여) 치는 몇몇도 있었는데, 나는 아무래도 어색한지라 손바닥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집에서 TV로 아무리 대단한 공연을 감동적으로 봐도 내가 쇼파에서 박수를 치지는 않잖은가. 그러니 박수를 치는가 안치는가는 이 공연을 '실황'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닌가의 문제와 결국 맞닿아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결국 (내 옆자리 사람들과 나 스스로에게) 어색하지 않게 차차 박수를 치기 시작했는데 ,그대로 TV보듯 공연을 즐기는건 여기까지 와서 시차맞춰 공연실황을 즐기는 취지에 일단 맞지 않았고, 경험주의자로서도 안될말이었기에(푹빠진경험에 스스로 높은점수를 준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행진곡에는 박수가 필수이기도 하다는 기억이 나면서..
이 음악회의 시그니처 장면인 마지막 앵콜곡 라데츠키 행진곡에 맞춰 강약으로 박수를 치는 것이 이날 나의 최종 목표였기 때문에 -

하지만 내가 본 내 주변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치는사람은 끝까지 치고, 안치는 사람은 끝내 치지 않았다. 그들에겐 역시 그냥 좋은 TV로 공연하나 감상한 기분인 것이다.

3. 총 2시간 40분에 달하는 연주시간동안에, 너무 연주만 비춰주면 지겨울 것을 고려해서였는지 여러 연출된 영상들을 미리 준비해놓고, 진행에 맞춰 틀어줬는데, 그 연출이 너무 희한했다. 주로 좀 시간이 길고 서정적인 음악에 맞춰서 연출영상을 틀었는데, 종류가 좀 나눠져있었다.

4. 연출영상 첫번째는 무대가 되는 극장을 구석구석 훑는 것. 처음 시작할때는 하늘에서내려와 공연장 문을 통해 입장하기 시작하여('하늘에서 본 도시' 라는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아마도 실제로는 지미집에 높이 단 카메라가 공연장 정문을 통과하는 것이리라) 공연중간중간에 연주자와 지휘자 주변 사물, 꽃, 기둥부터 해서 샹들리에, 양각으로 조각된 조각품들, 천장그림들을 수시로 반복하여 샅샅히 훑어 내려간다. 뭐. 사람들도 실제로 음악회에 가서 듣다보면 귀로는 들으면서, 눈으로는 주변사물들을 관찰하기도 하니까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것이다. 그러나 영상은 친절하게도 굉장히 클로즈업하여,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조각품의 표정과 색깔이라든지 기둥의 양식들을 오래도록 보여주는데, 그 장면이 계속되면 음악회의 진짜 중요한 '실황 오케스트라의 악기소리'가 그냥 배경음악처럼 전락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게 되는 것이 좀 이상하고 어색했다.

5. 더 어색한건 사실 따로 있었는데, 그건 공연장이 아니라 아예 바깥으로 탈출해버린 영상이다. 두번째 곡이 시작될때부터 영상은 오케스트라가 아닌, 오스트리아의 자연을 난데없이 비춰주기 시작했는데, 봄의 꽃이라던지, 계곡의 물흐름이라던지, 풀밭의 낙엽이라던지, 흐드러지게 날리는 꽃잎들 같은것, 겨울의 정취로 눈이 쌓인 소나무의 꼭대기, 산에 그득히 덮인 만년설등등 나중에는 성이나 건축물도 여럿 보여주었다. 근데, 그 영상들이 너무나 뜬금없는 화면들의 이어붙임 (스토리가 없으니) 이라 일단 너무 이상하다.(그 이어붙인 이상한 영상을 300명이 어두운 영화관에서 강제로 보게 됐는데 아무도 군소리 없이 보는게 더 이상했다) 그 영상은 마치 화면조정시간에 랜덤으로 재생되는 자연을 담은 영상이라던지, 노래방에 뮤직비디오가 없으면 부득이 나오는 자연을 담은 영상이라면 비슷할듯. 위화감의 또다른 이유는 오케스트라가 연주중이라 실제로 영상에 나오는 자연의 소리는 다 배제되서, 계곡이 흐르는 영상인데 물소리가 안나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게 바람이 많이 부는데 바람소리는 안들리는, 그러니까 영상과 소리가 전혀 매칭되지 않는 어색함.
마지막 결정타는 그 영상들이 그냥 진짜 한 70년대에 찍은것 같이 촌스럽다는 것.

아무튼 나는 자연영상이 나올때마다 정말 헛웃음만 나왔고, 마지막에 예의 그 유명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나올때는 정말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하는 장면과 지휘자를 꼭 보고싶었는데, (그걸 보러 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연주시간 내내 도나우강의 사계절 영상이 나오는 바람에 약간 화가 날 지경이었다.

6. 오히려 연출영상중에 마음에 들었던것은, 조금 긴 곡에 아예 작정하고 붙인 발레영상 1개와 현대무용영상 1개였다. 그곡들은 아예 중간에 화면전환도 되지 않고, 그 곡을 배경으로 하는 발레공연을 감상하는듯 처음부터 끝까지 무용수들의 영상만 틀어주었는데, 배경역시 비어있을 때 미리 찍었지만 그시대의 아름다운 공연장 건물이었고, 무용수들이 공연장의 여러군데를 뛰어다니면서 장면전환이 많이 되어 건물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었으며, 춤으로 표현하다보니 스토리도 잘 눈에 들어와 중간중간 지겨움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다만 춤들이 좀 전위적인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는데, 신년음악회가 전통적인 음악회보다는 좀더 이벤트적이고 가벼운 곡들로 구성되는 그런 기조 때문인것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영상연출가의 취향 때문인지 알수 없으나 여하간 웃음이 날만큼 재미있고 또 촌스러웠다.

7. 지휘자가 장난스럽운 표정을 하는것이 좋았다. 이것이야말로 신년음악회 특유의 가벼운 분위기 때문인것 같은데, 평소 지휘자들 특유의 엄근진 표정과 박수도 함부로 못치는 분위기가 아니라 한곡 끝나고 지휘자가 꼭 한번씩 관객을 돌아보며 마치 박수를 즐기는 것 같은 표정이 매우 귀여웠다. 마지막 라데츠키 행진곡을 할때는 장난스러운 이벤트도 많이 한다는데, 그냥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유한 분위기였다.
한편 관객석이 일반 음악회의 구성보다도 훨씬 빡빡하게 들어차, 오케스트라 단원 바로 옆자리까지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니까 관객이 무대위에서 지휘자를 보면서 음악감상을 하는 격이다. 생각보다 쇼킹했는데, 뭐 안될건 또 없지. 그각도에서 보는 공연도 좀 신선할것도 같다. 지휘자의 지휘를 보면서 음악을 들어보는 것도 나름 신박한 경험이 될듯. 근데 소리는 좀 조화롭게 안들리니까 그건 마이너스겠지.(무대관객석 바로 옆 악기는 '호른'이었는데, 아무래도 시끄럽지 않을까.) ​

8. 반기문 전총장과, 오스트리아 총리가 영상에 잡혔다. 오스트리아 총리는 세계의 많은 국가원수중에 젊고 잘생기기로 특히 유명하다고 TV에서 본적이 있어 용케 알아봤다.

9. 클래식 화성악을 좀 배우고 싶어졌고, 메가박스의 클래식 소사이어티 멤버십이 좀 궁금해져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 연출이 워낙 눈에 띄어서 막상 음악 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빈약했네. 세계 3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뉴욕, 베를린, 빈) 음악수준은 당연히 훌륭하다못해 귀호강! 손가락이든 손바닥이든 발바닥이든 고개든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추지 않고는 못배길정도의 흥을 선사하였다. 19세기 요한스트라우스 가문의 춤곡들은 2019년 내게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듯, 사람만 없었다면 일어나 훼떼를 몇바퀴 돌았을지 누가알겠어?

11. 하여간 올해의 재밌는 버킷리스트를 1월1일부터 채워서 큰기쁨!


First Part
01. Carl Michael - Ziehrer Schonfeld March, op. 422 칼 미하엘 치러-쇤펠트 행진곡 ,
02. Josef Strauß Transactionen, Walzer, op. 184 트랜잭션왈츠 ,
03. Josef Hellmesberger Jr. Elfenreigen 요제프 헬메스베르거 주니어, 요정의 춤(엘프의춤곡).
04. Johann Strauß Jr. Express, Polka schnell, op. 311 ,
05. Johann Strauß Jr. Nordseebilder, Walzer, op. 390 북해풍경왈츠
06. Eduard Strauß Mit Extrapost, Polka schnell, op. 259 빠른 우편 폴카.

Second Part
07. Johann Strauß Jr. Ouverture zur Operette - Der Zigeunerbaron 오페라 서곡 집시 남작,
08. Josef Strauß Die Tanzerin, op. 227 (여자)무용수
09. Johann Strauß Jr. Kunstlerleben, Walzer, op. 316 예술가의인생 왈츠
10. Johann Strauß Jr. Die Bajadere, Polka schnell, op. 351 라 바야데르.
11. Eduard Strauß Opern-Soiree, Polka francaise, op. 162 에드워드 슈트라우스- 오페라의저녁, 프랑스폴카 춤곡
12. Johann Strauß Jr. Eva-Walzer aus der Oper - Ritter Pasman오페라 '기사 파즈만'중 에바의 왈츠
13. Johann Strauß Jr. Csardas aus der Oper - Ritter Pasman 오페라 '기사 파즈만'중 차르다스.
14. Johann Strauß Jr. Egyptischer Marsch, op. 335 이집트행진곡. 좋음.
15. Josef Hellmesberger Jr. Entr’acte Valse 간주곡왈츠.
16. Johann Strauß Jr. Lob der Frauen, Polka mazur, op. 315 여자에 대한 찬사, 마주르 폴카
17. Josef Strauß Spharenklange, Walzer, op. 235 천체의 왈츠.

Encore
18. Johann Strauß Jr. Im Sturmschritt, Polka schnell, op. 348 폭풍 속에서.
19. Johann Strauß Jr. An der schonen blauen Donau, Walzer, op. 314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20. Johann Strauß Sr. Radetzky-Marsch, op. 228 (Arr. Leopold Weninger) 라데츠키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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