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소설분야에서는 인간실격,시계태엽오렌지,인생이 2017년 3대장. 인간실격은 예전부터 늘 보고싶던 책이었는데, 의외로 쉽사리 집어지지 않다가, 8월휴가때 미니북으로 구입하여 휴가지에서 다 읽고 돌아왔다. 뭔가 살짝 아쉬웠던 다낭에서의 추억이 이책보다 임팩트가 약했다고 하면 약간 과장일까, 그만큼 책이 강렬했다. '오바요조'는 이방인의 '뫼르소'를 봤을때처럼 음의 아우라가 가득했던 친구, 나로서는 쉽사리 접할수 없는 세계를 매우 디테일하게, 그리고 분명 이상한 행동들만 일삼는데도 묘한 설득력이 있도록 풀어놓았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끝도없는 파고내려감, 그리고 그에 대한 뭔가모를 애잔함이 가득차올랐던 책이다. 시계태엽오렌지의 알렉스는 그에 비하면 공감과 연민이 아닌, 강퍅하고 잔인한 행동을 일삼고, 그의 교화의 가능성에 대한 디스토피아를 그린, 1984와 같은 암울함이 가득했던 책.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후들후들 떨릴만큼 무서운 공포영화같은 내용이지만, 뚜렷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누군가 나에게 보기보다 어두운책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러고보면 나 스스로 여태껏 밝은 것은 가벼운 것으로, 어두운 것은 무거운 것으로 이분법적으로 사고해왔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것만,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는것이 세상은 아니니까, 내가 책으로 얻을수 있는 것은 이런 가장 반대의것, 그리고 생각할 것이 아니겠나.
비소설분야로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이 가장 흥미로웠으며 타인의고통,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도 재밌게 보았다. 소설을 좋아한다면, 그 소설속 주인공들이 더욱 사랑스러워지게 되는, 작품구성에 대한 작가의 노하우를 다룬 이 책, '소설가의 일' 그리고 그와 비슷한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두권을 권하는 바이다. 수잔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그분야의 클래식답다는 생각이 들도록 엄청난 임팩트가 있었으나, 역시 두번은 못 볼것 같이 잔혹하다. 이외에 올해 유독 많이 접한 추리소설 쪽에서는 '붉은손가락'이 제일 마음에 들었고,의외로 볼때는 힘들었는데 걸온더트레인도 기억에 남는다.
17년 하반기에는 가까이에 책친구가 하나 생겨 서재를 공유하는 즐거운 경험을 했고, 혼자 읽을 때보다 독서의 양이나, 속도, 감상의 나눔에 큰 탄력을 얻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책을 나누기 위해 나역시 부지런히 봐야지!
오락영화로 눈이 즐거웠던 발레리안과, 어지러울정도로 화려한 색깔과 움직이는 그림같은 환상적인 영상미를 구현한 러빙빈센트가 기억에 남는다. 따뜻한 감동이 남았던 '내가죽기전에듣고싶은말'도 제목만 빼고 다 마음에 들었지. 발레리안을 보고 데인드한의 영화를 몇개 더 찾아보고 싶어졌는데, 그 이후 개봉한 튤립피버도 못 보고, 찾아보고싶던 '킬유어달링'도 결국 못 봐서 아쉽네. 또한 '무한대를본남자'가 기대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는데, 순수한 학문에의 욕망은 역시 마음을 동하게 하며, 어느 화려한 재미보다도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 고급스러운 책상을 갖고 싶은 그런 마음같은 게 있었다고 할까. 그리고 역시 제레미아이언스는 여전히 잘생겼고, 우아했다.
영화관에서 본것과 VOD로 본것을 다 합쳐도 일년에 12편이라니, 한달에 한편정도밖에 보질 않았네. 보고싶은 좋은 영화들이 많은데도 고작 두시간의 여력조차 없다는 것은 슬픈일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개봉작도 개봉작이지만, 좋은 영화들을 따로 많이 찾아보고 싶네.
올해는 뮤지컬 2편, 현대무용 1편, 작품전시 1편, 박물관 1번, 그리고 오빠의 공연 1번
많지는 않지만, 구성은 고른 편이니 다행인가 ㅎㅎ 다카마쓰에서 미리 안도타타오의 작품을 관람하지 않았더라면, 뮤지엄산의 작품들은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거의 비슷한 작품인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원주에 갈일이 있다면, 충분히 들러볼만한 강추하는 작품들이다. 아애가 통역을 맡아 무용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해준 현대무용 공연이 짧았지만 매우 임팩트있었고 무용공연은 역시나 몸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하는 황홀한 시간이다. 작품전시전, 기대한만큼 만족했던 '에셔전'도 훌륭했다. 디자인전에 가까운 에셔의 작품들은 없던 영감도 불러 세워일으킬만한 엄청난 힘이 있었는데, 훌륭한 전시에 대한 갈망은 부지런한 탐색과 행동으로 충족시켜야겠지. 내년에도 오감이 즐거운 예술들을 향유했으면-
올해의 특이사항은 생각지도 못했던 영업부로의 발령 및 그로부터 파생된 모든 일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작년말에 F/X리더스 연수를 무사히 수료하고, 1월에 이로 인한 포상연수, 2월에는 기업지점장님이 챙겨주신 상도 있어 얼떨떨할 때쯤, 3월에 급작스럽게 수시발령이 났다. 내자리가 아닌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도 잠시, 이곳에서 그간 만나지 못했던, 비전을 갖춘 많은 훌륭한 분들을 뵙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성격도 좋고 예쁜, 사기캐같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전지점에서와 달리 나는 일의 활력을 찾았고, 출근이 즐거웠다. 몰입하고 싶게 되었고 팀웍과 일에 대해 근본적인 생각을 다시금 했다.
남편님이 갑작스럽게 그만두고 일년여정도 준비하며 새로운 회사에 취직했고, 그간 나는 주변에서 많이들 걱정해줬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큰 부담을 갖지 않았다. 한번 살다가는인생에 하기 싫은것을 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이 어딨으며, 그런 상황에 처한 친구를 내가 그래도 이만큼 벌면서 부담 적게 조력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원하는 바에 잘 될수 있다고 믿었으며, 혹여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무엇을 하든 또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2017년은 대체적으로 일기에 분노보다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많았고, 그만큼 나의 날들이 하루하루 행복했음을 의미하겠지. 이 이야기는 4월 이후, 그리고 7월이후에 더욱 구체적으로 현재진행형이므로, 은행생활 10년만에 처음으로 규정집까지 기어이 찾아읽게된 몰입의 즐거움은 2018년에 그리고 그 이후에 더욱 알차게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