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샌 허리가 좀 안 좋아서 한의원에 다니는데
우리지점 옆 가까운 한의원에 가서 점심시간에 침을 맞고 부황을 뜨는 치료를 주로 한다.
한의사 선생님이 짧은 질문을 몇번 던진 후
치료대 위에 엎드린 내 허리를 두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본 후 침을 놓는데
허리에 대여섯개, 발목과 발가락, 손가락과 손등 몇군데에 대수롭지 않게 침을 툭툭 꽂아 넣은 뒤
허리에 뜨거운 원적외선을 쐬어주고 나가시면 나의 말없는 투쟁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바닥을 마주보는 내 얼굴을 받치는 베개는 친절하게도 아래로 뚫린 도너츠 모양인데
그 위에 일회용 위생시트(기름종이 정도의 표현이 적절)를 놓아주어 그런대로 괜찮다.
문제는 침을 놓아 감히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는 내 몸인데,
시간이 가면서 이걸 조금씩 움직여야만 하는 고통이 적지 않다는 것.
허리에 침을 놓기 위해 한의사 선생님은 웃옷을 적당히 걷어올려 놓았는데
등쪽은 갈비뼈 부근까지 잘 접혀있으나
바닥에서 미처 뗄 틈이 없어 아직 바지에 꽂혀있는 웃옷의 앞판은
그 탄성력을 발휘하여 등뒤에 옷을 끌어내려 꽂아놓은 침을 덮어버릴 기세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잘 접어놓은 등부분의 옷자락이 행여라도 내려올까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옷 사이에 지렁이가 기어가듯 스물스물 움직이는 감촉을 고스란히 느끼는 수밖에.
시간이 조금 지나면
침을 놓은 오른팔이(난 왼쪽 허리가 특히 아파 오른손에만 침을 맞았다) 슬슬 저려오기 시작한다.
피가 통하려면 손바닥을 뒤집어 시원스럽게 몸통에 붙여주면 좋으련만
그럴수는 없으므로 가능한 몸에서 팔을 떨어트려 몸통과 팔을 직각으로 만들어주는 게 그나마 가장 낫다.
그 좁은 치료대 위에서 어깨죽지에 힘을 줬다 풀었다 해가며 피를 통하게 해보지만 별로 소용은 없고
손바닥 아래쪽에 힘을 주어 땅을 딛고, 중지와 검지 약지 세 손가락을 조금씩 굽혀 애벌레 기어가듯 조금씩 몸쪽으로 끌어당기는 게 고작이다.
이쪽저쪽 치료대를 오가던 분주한 간호사가
지나가다가 내 발곁의 기구를 살짝 치고 지나가 차가운 스테인레스의 감촉이 발에 닿으면
갑자기 머리끝이 쭈뼛 서면서 걱정에 빠지기 시작한다.
'저 간호사가 저 봉을 한번 더 쳐서 그게 내 발에 놓인 침을 건드리면 어떡하지?
무거운 걸 들고 지나가다가 그 봉을 꾹 누르면 침이 내 몸에 깊숙히 박히진 않을까?'
고작해야 몇분인 그 짧은 시간에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얼마전 재미있게 읽었던 '잠수복과 나비'란 책에서
로크드 인 신드롬에 걸린 주인공의 회상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음식물 섭취를 조정하는 기구의 경보장치가 30분 전부터 아무도 없는데 계속 울려댄다.
게다가 내 오른쪽 눈꺼풀을 봉해놓았던 반창고가 땀 때문에 떨어져
반창고에 붙은 속눈썹이 고통스럽게 내 동공을 찔러댄다 ]
침을 맞을 때면 난 잠깐 장 도미니크처럼 말못하고 눈만 꿈뻑이는 로크드 인 신드롬 환자가 된 기분이다.
난 언제든 소리내어 간호사를 부를수도 있고 침도 금방 뺄테지만,
순간 예민해지는 머리속은 그 누구 환자 못지 않다.
" 불편한덴 없으세요? "
이 한말의 소중함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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