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를 뚫고 평양냉면집에 식사를 다녀왔다. 지점장님 휘하 우리팀 8명이 전부 출동했는데, 하필 날을 잡아도 이런 날을 잡아서 안그래도 우울한 표정이 더 우거지상이 되었다. 이 부서에 처음 온 날 나는 면담한답시고 이리저리 불려다니면서 조언(을 가장한 뒷말)을 많이 들었다. 각자 특정인물을 들어 조심하라고 했다. 다 모아놓고 보니 서로가 서로를 지칭한 꼴이었는데, 나는 마치 편갈린 반에 떨어진 전학생 같은 기분이었었다. 어차피 그럴 기분도 아니었지만 여긴 입닫고 조용히 다녀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했다. 그렇게 말 아끼고 있다보니 사람들의 행태가 면면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점장님은 호불호가 확실하다.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계속 기분나빠할 태클을 걸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장난은 치지만 애정어린 말투가 드러난다. 그런데 조직의 장으로서 이런 티가나는 행동은 꼭 말이 나오게 마련이라서 안그래도 말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하는 빌미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부지점장님은 말이 많다. 주제가 다양하고 호기심을 일으킬만하니 생산적일 수도 있지만 속내에는 말을 한 후 좌중이 보내는 눈빛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예전의 나라면 적극적으로 대응했겠지만 몇번의 커뮤니케이션 사건으로 인하여 처음만큼의 우호감은 남아있지 않다. 자신감은 좋지만 거기서 파생되는 부작용(무시, 조종, 종용)들은 파괴적이다. 다만 업무지식에 있어 인정할만한 분이니, 거기까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팀장님은 지금 승진을 하고싶고, 의욕이 있다. 잘해보려는게 내 눈에도 보인다. 첫날 그저 예전 팀장님과 안부인사를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정보를 꼭 본인과 먼저 단독으로 공유하라고 단도리를 단단히 할때부터 좀 의아했다. 뭐든 다 해보겠다고 끌어안고 있지만, 혼자서 힘에 부치는건 뻔하다. 다른 여자차장님과 일을 나눠해야하는데, 아마 그분이 못 미더우신것 같다. 내게는 본인보다 내가 이 업무거래관련 경험이 많다 하니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상담을 할때 보면 뭔가 항상 알듯말듯하면서 구체적이지 않게 뭉개서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최대한 몸사리려는 보수적인 입장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잘 몰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정말로 해당 사안이 불명확해서 그런건지 애매하다. 한가지 알겠는건,상대방에게 확언을 하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있는 일이고, 책임감이 동반될때만 가능하다라는 것. 예전에도 보면 비슷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어떤 사람은 명확히 말하고, 혹여나 바뀌는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다시 정정하고 사과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확실한건 없고 항상 가봐야 안다고 하는 식으로 상담한다는 것이다. 업무 뿐 아니라 조직 내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이야기가 흘러가기만 하고 나오지는 않는 느낌이다. 조금 의뭉스런 구석이 있어서 조심하고 있다.
다른 한분의 여자차장님은 그저 이 부서에서 편안히 있고 싶은 마음 뿐인것 같다. 맛집과 술자리와 휴가에만 관심이 있고, 업무는 최대한 미루고 싶어하는 것이 너무 눈에 보인다. 게다가 밥먹으면서도 이사람저사람 욕을 해대서 처음 이후에는 먹자고 할때마다 번번히 거절중이다. 업무관련해서는 전에 한번 나에게 미루는것 같을 때에, 정중히 사양했다. 앞으로는 최대한 업무는 겹치게 하지 않으면서 피해야 할 듯 하다.
그냥 이런게 빤히 보이는 사람들과 밥먹는것도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았는것도 비생산적인 일뿐이라서, 그냥 점심은 차라리 혼자 내 시간을 갖고 싶다. 비오는데 차까지 몰고 갔다왔더니 두시간 반이 넘게 지났는데,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 아깝지도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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