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이 끝나고 공을 줍다보면 묘한 감정이 든다. 마치 내가 쏟아놓은 말들을 다시 주워담는 그런 기분이랄까. 공은 말과 달리 다시 주워담아지는 것이 다르지만, 내가 저지른 것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 닮았다.
일단 흩어져있는 공을 라켓으로 툭툭 쳐서 한곳(주로 벽이나 네트쪽으로) 모은다. 그렇게 모인 공을 빈 바구니에 주워담는데 아무래도 한손에 최대한 많이 집는게 유리하다. 그래서 한손에 테니스공을 세개씩 네개씩 대여섯개씩 쥐는 묘기가 생기나보다 싶다.
서서 쓰는 긴 빗자루와 긴 작대기 달린 쓰레받기 같은거 쓰면 효율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공을 주울 때의 느낌은 뭔가 수련전후로 마음을 정비하며 마당 빗질하는 느낌. 여기저기 공으로 가득찼던 코트가 깨끗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감히 쓰레받기를 들이댈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
그것도 아니라면 맘 같아서는 바구니에 라켓으로 툭툭 밀어넣고 싶은데 눈치가 좀 보인다. 처음에 공 줍다가 라켓을 몇번 땅에 놓았는데 코치님한테 혼났기 때문에 왠지 라켓을 소중히 다뤄야 될것 같은 기분. 그치만 몇달 뒤에 알았다.
“라켓트 바닥에 놓지마요. 더러워져” (옛날 분이시라 꼭 라켓트라고 하심)
그래도 우리 코치쌤은 공을 꼭 같이 주워주시는 멋진 분이다. 대개 네트에 걸린 공 위주로 좀 주워 주시는데 너무 많이 친 날은 뒤에 같이 쭈그리고 앉아 땀을 흘리며 공을 줍기도 한다. 그렇게 그날의 시시껄렁한 농담과 담소를 나누게 됨. 가끔 뒷 타자가 등장하거나 일이 있으시면 '그럼 공 좀 주워주세요~' 라고 꼭 말씀하시는 분.
다 치고 체력 다 빠졌는데 공 줍는 시간이 마지막 진을 쏙 빼게 한다. 특히 더운 여름철에는 아이고 더워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쭈그리고 앉아서 플라스틱 바구니를 앞에 두고 오리걸음 걸으면서 (뻥좀 보태) 군인들 생각을 한다.
이런 단계가 있는 운동이 또 있을까 생각해 봤다. 사람들 나름대로 어떤 운동이든 잘하기 위해 각자 집에서 연습하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하겠지만, 프로가 아닌 이상 요새 일반인의 운동은 강사의 운동서비스 제공과 수강생의 (고가의) 레슨비 지불의 관계로 형성되기 마련 아닌가. 그런데 이런 공 줍는 과정이 뜻밖으로 이 운동에 예의를 갖추는 느낌. 그저 돈으로 쏠랑 끝내는 게 아니라 수강생의 마음의 준비도 시키는 그런 느낌 ㅎㅎㅎ
헉 그러고보니 코치님이 늘 레슨 시작 전에 네트를 마주 보고 꾸벅 인사를 시키는데. 혹시 이것도 그런..?!
테니스가 괜히 매너스포츠가 아니구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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