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육아휴직을 앞두고 부장님과 밥 먹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왜 이렇게 빨리 들어가? "
"그래도 이제 7개월인데요. 출산 전에 준비도 좀 하고 여유도 좀 가져보려구요. "
"그게 들어가기 전에는 받는데, 나와서는 못 받는거 알지? "
"네? 뭐를요?"
"직장에서 봐주는 거 말야. 애 있다고. 임신 중에는 뭘 시키기를 하냐 갈구기를 하냐. 걍 가만히 있음되는데 나같으면 막달까지 다니겠다. "
2008년에 입사한 이래 쉼없이 다녔으니 난 올해 초 만 13년이 지나고 14년차 직장인이었다. 회사 쳇바퀴가 너무 지겨워 휴직이란 걸 간절히 꿈꾸던 때도 있었지만, 소망하던 때 이루지 못하고 나니 오히려 요새는 좀 덤덤해졌었다. 마치 끼니에 밥을 못 먹어 너무 배고픈 때가 지나면 배고픔이 오히려 좀 사라지는 것 같이 말이다.
그래서 처음엔 나도 휴직이란 걸 하게 된다는 것이 좀 믿어지지가 않았다. 임신보다 더 실감나지 않는 게 휴직이었다.
은행은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이어서 그런지, 들어오는 사람들 성향이 그래서 그런지, 평균보다 이른 나이에 회사에 입사하고 비교적 빨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2008년 입사 동기인 내 친구들은 벌써 아이가 한둘씩 다 있고 심지어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 2-3학년인 경우도 꽤 있다. 결혼도 빠르지 않았지만 임신은 더 늦은 난 이번 육아휴직을 공표한 것이 (둘째나 미혼을 제외하고) 동기 중 거의 마지막이었다. 내가 돌아가는 2년 뒤에는 직급이 무려 차장인데.... 이건 내가 복직을 하게 되는 그 지점 사람이 보기엔 적잖이 놀랄만한 일이다. (아니 이분은 도대체 어떻게 된 분이죠....?? )
우리 회사에서 휴직은 2년을 쓸 수 있는데 그 중에 6개월 이상을 남기면 나중에 남은 기간을 분할로 다시 쓸 수 있다고 했다. 아마도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눠 쓰는 사람이 좀 있는 모양인데, 나는 정말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한꺼번에 풀로 쓰는 걸 선택했다. 8년 뒤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 지 나도 세상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은행 중에는 육휴를 3년을 지원해주는 선진적인 곳도 있는데, 우리는 노조에서 말만 무성했지 내가 휴직하는 날까지 협상이 이뤄지진 않았다.
휴직일을 언제로 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꽤나 오래 고민하였다. 난생 처음 겪는 몸의 변화가 다달이 지날수록 어떻게 버라이어티하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휴직 경험자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1) 나중에 복직할때 아이를 떼어놓고 나오기 후회되니 최대한 늦게 들어가라 2) 첫 아이 낳기 전 몇달이 인생의 황금기다. 조금 일찍 들어가서 꼭 누려라! 이렇게 양분되는 모양새였다. 초기에는 입덧으로, 만삭즈음에는 몸이 많이 무거워 컨디션이 떨어지지만 나머지 기간은 할만하다 하여 최종적으로는 4월 9일(7개월 26주 1일)을 마지막 출근일로 정하였다. 2번안을 선택한 셈이다. 사실 너무 회사를 오래 지속적으로 다녀서 나도 좀 놀아보자 싶은 마음이 컸다.
연차가 꽤 되다보니 올해 여름휴가 5일을 제외하고도 쌓여있는 연차휴가가 무려 21일이나 되었다. 올 1분기에 병원 정기검진으로 휴가를 몇번 썼음에도 불구하고, 휴직 전 남은 휴가를 전부 소진하면 한달이 훌쩍 넘는 정도의 짬이었다. 그리하여 정작 회사에 안나가기 시작한 건 4월 초였지만 실제로 휴직 처리가 된 건 5월 중순. 새삼스레 회사에 오래다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일부 휴가만 쓰고 연차휴가 보상비를 받을까. 연차를 전부 소진하고 휴직일수를 뒤로 미룰까도 여러모로 고민했다. 휴직 기간 1년간은 유급이고 나머지 1년은 무급인데 경험자 선배들의 말대로 이거저거 따져가며 손해보지 않게 날을 정하였지만, 사실 돌아보면 그런 자잘한 것에 집착하는 것보다 인생의 큰 사이클에 중차대한 결정을 어떻게 단호하게 내리는가 또는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가 더욱 큰 것을 좌우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당장 작년 난임병원비만 따져봐도 지금 휴직 월급 일할 계산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 마치 문학책 비평을 하라고 했더니 오타를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하나..
1분기에는 회사일이 너무 바빴다. 1월의 단축근무가 끝나고 나니, 2월은 시간외근무 한도 20시간을 풀로 채울만큼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팀에 인원이 하나 줄어서 원래 있던 양을 커버하는 것도 품이 들었고 1사분기 업무도 꽤 많은 편이었다. 본점 이사 후 부서는 슬슬 자리를 잡아가는 기분인데, 여전히 내가 꽤 많은 딜에 적극 개입되어있다는 것은 좀 이상한 대목이었다. 다른 이들도 이들이지만 내가 마음을 좀 달리 먹고 이제 넘겨주는 포지션을 취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남은 이들의 수행력 부족으로 부서의 퀄리티에 고민이 생기는 부분들은 이제 내 몫이 아닌데도, 굳이 나서서 연수를 제안하고 부족분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맞는 행동인지 고민이 생겼다. 이게 욕심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책임감일까. 오지랖일까. 그저 제 자리에서 할일은 열심히 한다는 나의 오래된 버릇일까. 그냥 떠나는 사람들이 설렁설렁한다는 그런 편견이 싫어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3월 말쯤 되었을 때 임신 7개월차가 되었고 이제 적당한 옷으로는 배를 가릴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날은 (배가 고무줄로 된) 임산부용 바지에 헐렁한 니트를 입고왔는데도 그 위에 걸친 자켓이 잠기지가 않아서 당황을 했다. 회사 건물 로비나 공용공간에서는 되도록 티가 안나게끔 다니려 했기 때문인데, 이제 태로도 숨길수 없게 된 것. 다행인 것은 휴직에 들어가기 까지 몸이 많이 비대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즈음 몸무게는 임신전에 비해서 4kg정도 늘었었다. 아예 안 늘은 것은 아니지만 배만 나오고 다른 얼굴이나 상체 등등은 큰 차이는 없는 정도. 남들 보기에 무식하게 살찐 모습이 될까 회사에서의 임신을 걱정했던 지난날이 생각나 좀 우스웠다.
긴 임신기간동안 시간이 잘 흘러가게 된 이유에는 회사에 출근한 덕도 있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빡세게 출퇴근 및 근무를 한다는 것이 어느정도 내 정신을 팔게 한것은 분명하니. 그리고 출근과 점심시간 등 아침점심저녁 적당히 움직일 수 밖에 없는 환경도 포함이다. 집에만 있었다면 무거워지는 몸에 일희일비하며 정신이 몸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르겠다.
일도 당연히 쉬엄쉬엄하게 되고 출퇴근도 좀 배려받으니 이런 생활이 좀 더 이어져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처음 임신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 긴 기간이 잘 상상조차 되질 않았는데 시간은 꼬박꼬박 잘만 흐른다.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 12영업일 남았다. 정말 이제 금방이다.
마지막 주가 되었다.
시간이 서서히 흐르는듯 하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휴직 3-4주를 남겨놓았을 때만해도 계속 일을 했는데 이제 마지막 주가 되니 위화감이 느껴진다. 내자리가 아닌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지난 주 금요일에 갑자기 부서의 절친 언니가 4월 2주차 대체사업장행으로 정해지면서 미리 페어웰을 한 것이 마음의 변화를 불러왔다. 언니는 전날 내게 그 이야기를 전하며 좀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는데 나도 망연자실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예전부터 정해진 일정이었는데 그깟 일주일이 뭐라고 우리는 절망에 빠지는가. 참으로 미련은 끝이 없다. 아쉬운대로 금요일에 언니와 한시간가량 부서 3년간 흥망성쇠를 되짚는 나름 즐거운 티타임을 가졌다. 이만큼 밀도있게 가까이 시간을 보낸 이가 나를 배웅하는 자리에 있다는 건 심적 안정감 측면에서 고마운 일이다. 한주 먼저 이별한 것이 다음주 쿨하게 떠날수 있게 된거 같아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의 편지와 마지막 포옹과 모습에 눈물이 안났다면 거짓말이지만, 들키진 않았다.
같은 날 남편이 차로 마중을 나와 자리정리도 미리 했다. 3개월 전 본점 이사때 미리 정리해둔 부분도 있어 큰 쇼핑백 두개면 충분했다. 이렇게 적은 물건만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심플한 자리. 남은 한주일은 그냥 오는 전화만 받고 앉아만 있는 상태다. 빠질 것으로 정해져 마음이 뜬다는 것이 얼마나 인력 운용에 비효율을 초래하는지 내가 몸소 깨닫고 있다.
마지막 출근 날이다
별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려 하고 별다를 것 없이 지나가는 게 목표이다. 삼년전 영업부를 떠날때 울고불고 하며 현관 복도부터 지하철 가는 길까지 모든 장소를 사진으로 박제해 놓았던 것이 무색하게도 다시 이 건물에 돌아온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가는 일일 것이다. 마지막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는 병이 있는 나인 걸 잘 알기에 마지막 출근길 마지막 점심길 기타 등등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고 계속 되뇌었다.
퇴직도 아니고 휴직이지만 2년이나 되기 때문에 내 생각보다도 꽤 긴 기간일 것이다. 난 세달 정도 임시 기간 정도만 체감되는데 마치 그 이상의 기간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당장 담주에 아님 늦어도 태교여행 후엔 돌아와야할 것 같은 그런 어색함. 이제 노예근성 버리고 나도 프로 백수가 되어봐야지. 누구나 부러워하는 휴직 전 삼개월을 재밌게 보내보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보는 사람마다 축하와 축복을 건넨다. 내 생에 이렇게 댓가없는 축하를 받았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축하를 받으니 내가 축하받을만한 일을 겪고 있다는 자각이 들고 있다. 흔한 생일축하와 같이 이미 진심은 조금 줄어들은 그런 정례화된 일이 아니라, 임신이란 세상 어떤 일보다 특별하고 행복한 것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내게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나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더 진심으로 이 사건(임신)을 바라보고 진지하게 임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벼이 여기는 건 쿨한게 아니라 나에게는 못된 버릇 회피다.
휴직이 물리적으로는 실감이 안나지만 사람들이 내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 전화, 문자들이 내가 당분간 이곳에 이 조직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고 있다. 부서에서 이제 떠났으니 발령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는 휴직이지만 그들에겐 발령이다. 기억을 되짚어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좋은 사람들이 많았더라. 기억은 곧잘 미화된다지만 그냥 좋은 기억만 갖고 떠나는 것이 원래 내 스타일이다.
사람들이 휴직 소회를 물을 때마다 휴직 때 알차게 보내지 못하고 뭘 안 하면 죄책감이 들것 같다는 답변을 했던 것 같다. 사실 휴직기간이 놀라고 있는 것은 아닌데 내가 자꾸 놀지 못해 걱정이라 하니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그치만 바로 전날까지 1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를 다녔으니 당장은 노는 기분이 드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막달이 되면 운신도 힘이 들게 되겠지만 그때까지 두어달은 내게는 분명 그냥 휴가와 다를 바가 아니다. 남들이 그러면 어떠랴 내가 즐겨야지.
금쪽같은 휴가에 뭘 하지 못한다고 자책하지 말고 조금 편안한 기분을 가져보자. 이제 기껏 2년중에 하루가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집안을 좀 둘러보고 정리도 하고 버릴 것 버리고 돌봐주며 여유로운 시간을 최소 하루 이틀 보내야겠다. 내 마음도 적응할 시간을 줘야지!
이제 진짜 휴직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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