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병원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일단 병원은 하나지만 고객마다 개별적으로 택하는 여러 선생님이 있고, 대개 여자 선생님들이다. (내가 다닌 병원은 여섯 분 전원이 여자분이었다.) 그리고 철저한 예약시스템이 따라 붙는다. 고객들은 주로 무표정이다 못해 차가운 느낌이고, 사람이 많아도 개인적 영역을 철저히 지키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원장실마다 옆에 붙어있는 검진실과 시술실도 매우 독립적이고 프라이빗하다. 아무래도 선택적으로 방문하게 되는 병원인데다, 당장 어딘가 몸이 아픈 사람보다, 지치고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오기 때문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담당 원장님은 이곳 원장님 중 막내였다. 난임병원에 가기로 마음 먹고 나서 가장 처음 닥치는 미션이 어느 병원 어느 선생님을 찾아가느냐인데, 평판과 명성이 넷상에 오르내리는 건 기본인 난임병원 선생님들이란 실제로 만나 보기도 전 인터넷의 유난스런 후기부터 접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무조건 추천부터 절대 불가까지 몇번씩 선생님을 바꿔가며 진료를 본 사람이 아닌 이상 자기 선생님의 케이스만 겪었을텐데 어떻게 그렇게 단정적인 후기들을 내놓는 지 나로서는 가끔 의아한 부분이었다. 결국 결과가 좋아야 하는 병원의 특성상 오랜 경력의 원장님들이 인기와 예약의 수위를 가져갔고, 막내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뜨내기 손님의 당일 방문 진료를 주로 맡게 되는 것 같았다. 난 새언니의 추천을 받아 처음 원장님을 정했었는데 두번째 진료에 시간이 안맞아 부득이 옮기다가 막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말씀은 많지 않아도 차갑지 않은 느낌이 내게는 편안한 기분이 들어 그날로 담당 원장님을 변경했다.
이곳에 한달에 최소 다섯번 이상씩 일년여를 다니면서 원장님과 일정거리 이상의 친밀도가 쌓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워낙 많은 고객들이 10분단위로 예약을 하고 다녀가는데다 한사람당 길어도 15분을 넘지 않는 진료시간인 걸 감안하면 그 사이에 엄청 친해지는 것도 어려움이 있다 싶지만, 원래도 설명이 많지 않은 나의 담당 원장님과 굳이 많은 걸 묻지 않는 나의 성격의 콜라보로 우리는 몇달동안 기계적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에 가까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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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11월 어느 아침, 초음파를 보던 원장님이 갑자기 커튼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을 불렀더랬다. 그리고 "두 분 축하드립니다" 라고 말씀을 건네는데, 그 때서야 그런 말씀도 하시는 분인 걸 처음 알았다. 그 한줄의 구절이 어느정도 이상의 확신을 가져도 된다는 신호와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받은 그 사진. 그 물건을 내 손에도 쥐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 같았다. 뭔가 희한한 기분. 감격스러웠다고 해야하나.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해야되나. 갑자기 엄마가 된다는게 너무 말이 안되는데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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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병원은 임신 초기의 과정, 즉 배란과 착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곳이라 어느정도 시기가 넘어가면 난임병원은 '졸업'을 하고 분만을 해주는 병원으로 옮긴다. 주수로 8주차쯤 되었을 때 원장님은 내게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말인즉슨 그동안은 위험할 수도 있는 나날이었다는 뜻으로 들렸지만 아무말 하지 않았다. 늘 같은 표정 같은 느낌인 이 원장님은 특별한 감정적 동요를 주지 않아 나에게는 오히려 편했다. 향후엔 11주, 15주 두번만 오면 분만병원으로 전원을 한다고 했다.
일년여를 습관처럼 다녔는데 갑자기 닥친 임신에 적응도 되기 전, 이제 두 번이면 이곳도 끝이라는 게 얼떨떨했다. 아마도 시험관을 단번에 통과하리라는 기대가 없었기 때문일텐데 벼락같이도 마지막이 왔다. 졸업이란 말도 어색했다. 아주 긴 시간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다닌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왠지 여기 오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초기 여러가지 검사, 나팔관조영술, 인공수정, 자궁내시경, 폴립수술, NK세포링거, 시험관까지 적잖은 단계를 거치긴 했다. 이 이상의 것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생각한 날도 있었고, 언젠가 병원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 사람들은 다 어떤 단계의 무엇을 하고 있나 상상한 때도 있었다. 그들이 나보다 오래 다녔다면 그저 성과가 나질 않아 무한 반복 하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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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병원을 졸업하는 날.
카페 같은데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졸업하면서 그간 고생한 게 생각나 눈물을 펑펑 흘리거나 감격에 겨워 한다는데, 나는 너무 건조하게 리액션해서 그런가 오히려 그 말씀 잘 없으신 담당 원장님이 “ 더 궁금하신 건 없으세요? “ 라고 나에게 두번이나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 조그마한 원장실에 어울릴법한 더 조그마한 미스트를 내밀었다. 페어웰 선물씩이나 준비했다고 하기에 초라한 물건이지만 그녀에게 작으나마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 분명했다. 비록 마스크 벗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였어도 내가 문을 닫고 나가면 짧은 틈을 타 눈을 감고 맨 얼굴에 상쾌한 기분한번 쯤은 내줄 수 있겠지. 누군가의 인생에 작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인연인 법인데, 내 인생에 그분은 열 손가락 안에 들만한 귀인이 될 것이다. 정작 그분은 내가 기억이 안 날 지라도 말이다.
더 이상 이어할 말이 없어서인지 원장님이 어색하게 웃으며 둘째 낳을 때도 찾아 오라고 했다. 난 그런 그녀가 귀여워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또 오시라는 인사를 건넬수 있어서 산부인과를 선택한다는 이들의 말이 처음으로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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