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강남으로의 마지막 출근이다. 연말에 부서가 본부부서로 조직 개편되어서 오늘을 마지막으로 회현 본점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2018년부터 합정에서 당산 그리고 신논현 구간으로 2년 9개월을 다녔다. 몇달 전 현재 집으로 이사한 후에는 기존 구간에 마을버스까지 추가되었다.
초,중,고,대학교를 거의 마포에서만(엄밀히는 중학교가 연희동이라 서대문구지만 매우 인접) 다닌 나인데다가, 입사 하고서도 영업점이 굳이 집과 멀 필요가 없는 은행의 특성상 마포,서대문,종로,중구 정도의 거리를 다녔다. 본점도 회현과 상암동이라 더 멀리 다닐일은 아예 없을 듯 했다. 그 때까지도 직주근접의 큰 메리트를 모르고 살았지. 그래서 3년 전 처음으로 이 부서에 발령났을 때, 일도 일이지만 강남에 출퇴근 해야한다는 사실이 멘붕이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나에게 다들 하는 말이란 “이김에 강남으로 이사해” 라는 식이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발령 즈음 내 직무와 부서의 강제변경도 개인적으로 매우 불만이었고,덕분에 발령 후 장소도 그 부서의 사람들도 부정적 감정이 어거지로 따라 붙었다. 예전부터 있던 강남 선입견도 포함하여 이래저래 나한텐 그저 싫은 곳이 되었다.
사무실이 있었던 강남 교보타워는 이 근방에서는 독보적인 입지였는데 신논현에서 정말 엎어지면 코닿을 5초컷 거리인데다가, 사이즈도 엄청 크고 시설도 매우 좋은 랜드마크급 건물이었다. 일층엔 엥간한 건물 삼층 높이는 될만한 대형 트리가 서 있고, 부를 상징하는 층고는 까마득히 높았을 뿐 아니라 지하 두층엔 문화의 상징 오프라인 서점 교보문고가 붙어있었다. 그런 이유들로 이 근방에선 다들 이 건물에서 한번쯤 일해보고 싶어한다는데, 그때 나에겐 그마저도 별로 와닿지 않았다. 역삼동에 호캉스 하러 갔는데 창밖으로 고만고만한 빌딩 가운데 하필 높은 교보빌딩 회사건물만 버젓이 잘 보여서 기분을 망친 적도 있었다.
막상 다녀보니 다행히 급행 구호선이 잘 연결된 구간이라 출퇴근 소요시간 자체는 생각보다 적었다. 다만 구호선 극악의 구간을 급행을 타고 다니는 바람에 아침에 혼절 할 뻔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공황 요소도 분명 일부 늘었을 것이다. 그런 체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수기도 몇개 남았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대한 부담은 퇴근후 비활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꽤나 번화가에 있었지만 사무실 주변에서 뭔가를 해보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돌아올 시간이 늦어지는 게 싫었고, 번잡스러운 거리가 적응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른때같으면 속속들이 알만한 직장 주변의 가게와 핫플들도 거의 모르고 살았다.
와중에도 내 머릿속 강남 지도는 확장되었다. 신사-논현- 신논현- 강남으로이어지는 종구간 , 강남-역삼-선릉-삼성의 횡구간까지 지도가 완성되었다. 강남은 참으로 회사가 많고도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강남권에서 일한다는 지인들이 다들 어지간히 이 구간 내에 있다는 게 신기했었다. 간간히 보는 그들과의 만남이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아마도 이것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강남 직장생활이 될 것이다. 돌아보니 그리 미워할 것 까진 없었는데, 이제서 비로소 3년이 다 되는 시간동안 보낸 공간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렇지만 공간에 대한 애정이 비로소 탐색과 관찰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애초에 안될 일이었으니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강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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