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동안 나의 일기장에 아주 많이 등장했던 인물 중 하나인 지점장님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른 영업점으로 발령이 났다. 글쎄 이 인물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나. 애증이라고 해야되나. 애는 애같아서, 증은 말 그대로 증이다. 입이 아플정도로 부서사람들이 늘 이야기했던 안주거리. 다시 나열할 필요는 없다. 되짚을 시간조차 아까우니.
축구선수에게 감독이 어떤 존재인지 가끔 중계에까지 비춰질 때가 있다. 어떤 유명한 감독과 어떤 유명한 선수. 누가 누구를 이뻐하고 누가 누구의 눈에 들려 애를 쓰며, 감독의 존재감과 선수의 존재감이 교차되기도 한다. 어떤 선수는 감독에게 반항하면서 태업을 하고, 우리팀이지만 망해라라는 무언의 시위를 하기도 한다.
영업부에서 이 부서로 떠나오던 날이 내게는 아직도 생생한데, 그날의 인사 개입 정황과 내 기분으로 되돌아가보면 난 이 부서와 철전지 원수를 져도 부족하므로 이걸 2년이 지났다고 해서 갑자기 태세전환 한다는 건 이무래도 도통 말이 되지 않는다.
당시의 악의 주축들이 있었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전문가 운운하며 허세부리는그들. 포장만 그럴싸하게 하고 남의 뒷이야기만 확장하거나 뒷배경만 믿고 이기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이들. 지점장님은 그 중에서도 선봉이었다.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그런 장점으로 덮을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그랬다. 내가 발령의 충격에서 좀 벗어나 제 페이스를 조금 찾고 나서도 여전한 건 여전했다. 그동안 황언니를 비롯한 몇 동료가 보여준 비전이 아니었다면 난 이부서에 여전히 좀비처럼 다녔을 것이다. 솔직히 그동안 나는 이곳에서 나의 100을 발휘할 동기를 찾지 못했었다.
지점장님이 나에게 남긴 유산은 그런 것이다. 리더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것. 팀장과 지점장의 리더십은 매우 다르다는 것.자리가 길어지면 괜찮던 사람도 괴물이 된다는 것.
사람들이 서서히 바뀌는 데 2년 반이 걸렸다. 직원들은 부침이 있었지만 그렇게 직원들이 오고가는 사이에서 가장 거대하고 큰 산은 여전히 그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지점장님의 발령소식을 듣고나서 남은 이를 둘러보았을 때 , 내가 여기서 더이상 불평만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평소에도 존경해마지않던 새 지점장님이 부임해오면서 나는 이 부서에서 2년반동안 남몰래 해오던 태업을 오늘부로 중단했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나는 바뀌기로 했다.
그래서 마지막 송별식 날 자리에서 2차는 안가더라도 사진을 한장 찍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복잡미묘했다. 지점장님께도 그랬겠지만 내게도 일단락이 지어지는 느낌. 일막은 끝났다.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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