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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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을 잃어버리고 나서
생각보다 굉장히 큰 허무감이
오랜기간동안 자리잡아서 빠지질 않고 있다.
한창 쓰던 여행기도
다른 때 같으면 여행에서 막 돌아온 지금쯤 의욕에 가득차서 한창 쓸 때인데
요새는
하고 싶지만 잠시 미뤄둔 숙제가 아니라
하기 싫어서 잠시 미뤄둔 숙제 같은 느낌이다.
여독이 안 풀린 건지,
아니면 요새 일마저 바빠서 정신적 휴식이 충분히 안 이뤄져서인지
요새는 집에 가서 티비를 보며 멍때리다 12시에 자는데도 피곤이 가시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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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쥐로 바꾼 후 가장 퇴행은
구린 티스토리 앱이라
포스팅의 욕심도 당최 나지를 않는다.
뭐든 견물생심이라고
역시 자꾸 보듬고 만져줘야 욕구도 생기나보다.
아이폰에서 티스토리앱이 단아한 모습으로 나좀 예뻐해줘요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들어가 확인해줬던 것도 있던 게다.
그동안 티스토리 공식 앱이 있는 줄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능.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요인은
빠리에서 핸드폰이 털리며 함께 글이 날아갔기 때문에.
터키 때 썼던 글과 파리에서 쓴 글 외 기타 글들 말이다. 의외로 사진보다 걸리는 게 메모였다.
어떤 중요한 메모들과 내 단상들이 날아갔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고,
무엇이 있었는지 곰곰히 떠올리며 복기하는 것이 괴롭기 때문에
그 의미가 흐려질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후유증을 굳이 뼈저리게 느끼기보다는
역시 흐려질때까지 잠시 치워둬서 충격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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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그렇게 쓴 글을 갑작스럽게 타의로 잃어버리는 사태가 그동안 많지 않았었는데
그 충격을 제대로 맛보았다고 할까.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파이가 소중하게 모든 걸 기록한 그 수첩이 태풍에 날아갔을 때.
그 허무감 과 같은. (여기 비하면 너무 심한가)
현재 내가 소유한 것중 보물 일호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아마 그 글이 아니었을까.
아이폰을 잃어버린게 아쉬운게 아니라 글을 잃어버린게 아쉬운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은 나그네처럼 공수래 공수거 해야하므로.
억지로 후유증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든, 아니면 내적 성장을 위해서든
깨닫는 바가 있을 게다. 이번 사건으로.
그래. 다 그렇지.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미련은... 뭐. 어쩔수 없고.....
After
애플의 축복인지, 허공에 내 온갖 정보가 다 떠돌다 돌아온 무서운 결과물인지
어찌됐든 난 아이폰 2013년 5월3일 버전으로 완벽 복원했다.
아이튠즈로 동기화를 수차례
백업프로그램을 받아 restore를 수차례
아이패드 미니 초기화면에 내 잃어버린 아이폰의 첫 화면. 밤의 블루모스크가 뜨는 순간
근래 느꼈던 어느 희열보다도 짜릿했다.
그 기계들이 뭐라고 날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나.
난 그냥 핸드폰에 일기를 썼을 뿐인데.
다시 복원한 메모를 하나씩 읽으면서,
'잃어버린 원고'에 대한 가치가 정말 그만큼 valuable한가.
또 이런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것도 참 병.
여하튼, 감사하게도
결과적으로는 프랑스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말곤 다 복구했으니
이제는 다시 블로그도 맘잡고 하겠다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