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밤에 가끔 자다가 깨서 운다. 대체로 잘 자는 편이지만 새벽시간에 깨서 한참 울때는 같이 자기 시작했던 엄마가 곁에 없다는 걸 알 정도로 깨버렸을 경우다. 그럴 때 문을 살금 열고 들어가보면 어구컴컴한 방 구석 침대한켠에 일어나 앉아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오늘도 아기가 울었다. 내가 들어와 매트리스 위에 눕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아기는 자기 이불위로 풀썩 엎어졌다. 그리곤 잠시 뒤에 벌떡 일어나서 내가 살짝 열어둔 방 문을 꾹 눌러 닫고 다시 누웠다. 요샌 아기는 거의 문을 닫고 자는 편이긴 했지만 왠지 내가 뜨끔하다.
가끔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아직 푹 잠들진 못한 것 같다. 사실 소환되기 전 난 잘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렇다. 클렌징과 양치를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불려오면 언제 다시 나갈 수 있는지 몰라 아예 같이 잠드는 것이 속 편한 일인데 미리 씻어둘걸 그랬다.
어두운 방에서 뜬눈으로 이십분 쯤 지났나. 나가긴 어려울 것 같고 같은방 화장대에 있는 클렌징 워터로 간이 세수라도 하려고 조용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그러자 엎어져 자는 줄 알았던 아기가 미어캣처럼 슬그머니 머리를 들어 날 쳐다보았다. 우리는 어둠속에서 마주보고 웃었다.
불투명 유리 너머 드레스룸 방불을 희미하게 켜고 화장대 앞에 앉아 클렌징워터를 화장솜에 묻혔다. 얼굴을 대충 슥슥 닦는데 침대에 앉아있던 아기가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쪽쪽이를 문 채 화장대 앞에 선 아기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를 지켜보았다. 서랍을 열어 두번째 화장솜을 꺼내다가 나는 그냥 화장실 불을 환히 켜고 양치를 시작했다.
양치와 세안을 마치고 나오는데 아기는 배시시 웃으며 내가 자주 쓰는 선크림을 내밀었다. 세수하고 얼굴에 바르는 거 자기도 안다고 엄마에게 도움이 되려는 귀여운 손을 차마 거부하지 못하고 선크림을 받아쥐었다. 나머지 손으로 몰래 토너를 꺼내들었더니 또 자기도 써보겠다고 달라길래 손등에 살짝 톡톡 두드려주었다. 정돈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에라 모르겠다 거실에 물도 마시러 나갔다. 아기는 서둘러 날 따라나왔다. 물을 마신후 방으로 손짓하니 기뻐하며 방으로 돌아와 내가 들어온 걸 확인하고 방문을 꼭 닫았다. 자려고 침대위로 올라오니 빙 돌아 자기 침대로 날 따라 누웠다.
마치 게임에서 팅커벨을 먹은 기분이었다. 내가 가면 따라오고 멈추면 같이 멈추는. 바로 뒤에서 간격을 두고 딜레이를 가지며 팔랑팔랑 따라오는, 그런 요정같은 친구.
자려고 누운 팅커벨에게 어둠속에서 조용히 혼자 인사하고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주었다.
친밀함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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