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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제 3의 인물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

역 근처 스벅에 들러 라떼를 한잔 시켜놓고 남편을 기다리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커피를 픽업하고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는데 골목을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가 아기를 보곤 흐뭇한 표정으로 오시더니 갑자기 지갑을 여신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

거절할 틈도 없이 서둘러 자리를 뜨시는 바람에 반 접힌 천원짜리가 한장은 아기 손에 한장은 바닥으로 팔랑이며 떨어졌다. 흡사 구호와도 같은 그 문장이 조금은 거창하여 웃음이 나왔는데, 그래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한사코 아니라 부정하기도 그렇고 결국 2천원을 손에 말아쥐고 유모차를 힘주어 밀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끝나고 주변을 돌아다니다 가끔 내 외할아버지를 길에서 뵌적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항상 할아버지는 지갑을 꺼내어 이만원 삼만원씩 내게 쥐어주셨었다. 옆에 있는 친구와 맛있는거라도 사먹으라고. 그 행동에는 지체함이 없었다. 젊은이들이 가득찬 홍대입구역 버거킹에서 뵈었을 때는 드시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코트 안자락을 여셨다. 동교동 삼거리 횡단보도에서 뵈었을 때는 신호등을 건너던 중간에조차 잠시 걸음을 멈춰서 몇만원을 주시고는 금세 반대방향으로 사라지셨다. ’어? 외할아버지인가?‘ 하고 내가 멈칫하는 순간에 이미 날 보곤 지갑을 열고 계시던 손. 날리던 베이지색 코트자락과 베레모가 기억이 난다.

손녀에게 별다른 말씀은 많이 안 하셨지만, 반갑고 사랑스런 마음을 만날 때마다 넘치는 용돈으로 표현하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그래서 귀여운 아기에게 뭐든 쥐여주고 싶은 할아버지들의 마음이 그렇다고 한다면 나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고 우리는 돌아오는 길 시장 과일가게에서 커다란 배를 하나 발견하고 2천원을 내밀었다. 나라의 미래님께 걸맞는 건강한 디저트를 제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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