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날이 따뜻해서 오후에 아기와 둘이 한강에 나갔다. 요새 아기는 돌 줍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원 없이 줍고 또 주웠다. 손에 그득 쥐고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바닥도 못 짚고 다칠까봐 줍는 족족 받아 내 패딩 주머니에 보관해줬는데 덕분에 내 왼손은 돌무더기 주머니에 찔러넣을 수 없어 하릴없이 시려웠더랬다.
한참 줍고 걷던 중에 반대쪽에서 한 아주머니가 운동하듯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셨는데 아기가 그분께 갑자기 다가가 손에 들었던 조그만 돌멩이를 건넸다. 아는 사람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미처 말릴 틈도 없어 당황. 그러나 놀란 건 나 뿐인지 아주머니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살짝 허리를 굽히고 왼손을 펴 돌을 받고는 “고마워”하고 싱긋 웃은 뒤 돌이 든 주먹을 가볍게 쥐고 오던 속도 그대로 파워워킹으로 멀어졌다. 5초도 안되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기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울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와 웅얼거렸다. 그때 알았다. 아기는 본인의 소중한 수집품을 잠시 보여주고 다시 돌려받을 생각이었다는 걸. 그 건넴은 보관용이었단 걸. 해맑은 아기의 돌멩이 선물에 신나 미소지은 아주머니는 몰랐겠지만, 아기의 웅얼거림이 아주 조금도 들리지 않을만큼 정말 빠른속도로 사라지셨으니 그래도 잘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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