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urnal & Pic/일기

시작이 반인 나 같은 사람의 끝 없는 악순환

너무 정성들여 쓰다가 시간을 놓친다. 좋은 글감이 생각나면 키워드 메모장에 적어놓지만 뭉그적대다가 몇달이 (심지어 몇년도) 지나간다. 너무 감명받은 책은 캡쳐해놓은 문장이 너무 많고 그 감동을 더욱 잘 정돈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오히려 독후감을 쓰지 못한다. (오히려 별로인 책이 쓸말이 별로 없어 블로그에 대충 쓰고 반납해버리거나 치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간혹가다 맘 먹고 착수해도 더욱 잘 쓰려다보니 문장이 꼬인다. 타이밍을 놓치면 가뜩이나 명분이 사라져 공이라도 더 들여야하니 어지간히 맘에 차지 않으면 또 업로드를 못한다. 그러다보면 쓰고 싶은 이야기는 쓰지 못하고 늘 쌓여있어 부담만 늘어난다. 피터드러커의 '모두가 어제의 일로 바쁘다' 라는 조언을 보고 실소했지만 뜨끔했던 나를 고백한다.

내 공간(블로그)가 정돈된 느낌을 바라는데, 정돈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작업은 꽤나 지루하다. 작가들이 괴로워하는 부분이 이런 재가공 및 퇴고의 시간이라는 걸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작가는 아니잖아?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아무렇게나 쓰여진 글을 나중에 읽으면 너무 쪽팔린 건 사실이다. (아마 나중에 읽는 건 나 뿐이지 남은 읽지도 않을텐데) 잘하고 싶은 병도 심한 병이다.

그리고 나는 내 글이 읽는 사람들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너무 고민한다. 너무 퍼블릭한 것도 (장사꾼 같아) 싫고, 너무 프라이빗한 것도 (외로워서) 싫은 나 같은 노답 블로거는 걸맞은 주제 선택에 투머치한 심혈을 기울인다. 막상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가볍게 텍스트를 소비하고, 나도 내 친구 블로그에 들어가면 젤 재밌는 건 아무렇게나 지껄인 근황 토크인데. 결국 이 블로그는 나 좋으라고, 내가 나중에 보면서 흐뭇하라고 쓰는 건데 뭐가 그렇게 고민일까.

아주 간호오옥 가다 누가 책을 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손을 절레 내저으며 그건 낮은 가치의 글로 굳이 책을 만들어 독자의 선택에 혼선을 주는 '공해'이자 종이, 잉크 인력을 포함한 '자원낭비' 라고 말해왔는데, 더 솔직히 말하면 무료로 주어진 인터넷 공간조차 내가 일부 낭비하고 있다는 데 죄책감을 느낀다. (사실은 무료가 아니고 어떤 경제적 외부효과는 존재하고,그 덕분에 내게 이런 자리가 공짜로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겠지만) 그렇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말할 지인들이 몇몇 짐작이 되고, 나의 심신 안정과 유희를 위해서 이정도 지껄이는 것은 봐주기로 한다.

그래서 어쨌건 그냥 닥치는 대로 쓰고 싶다는 말이다. 뭐가 됐든 쓰다보면 맘에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하는 거지. 묵혀두는 것보다야. (네이버 메모장에 1200개의 메모가 있다) 아니 도대체 무슨 표출하지 못해 안달인 인간이길래 이렇게 발설하지 못하면 발광을 하는 건가 모르겠지만 어쩔건가. 사람이 생긴대로 살아야지. 우리 할머니가 인생은 지 멋에 사는 거라고 했다.

 

728x90

'Journal & Pic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별과 역차별  (4) 2022.05.27
사십을 맞이하기 때문인가, 산후에 오는 우울감인가  (3) 2022.03.23
인식이 높은 사람은  (0) 2021.06.06
냄새  (0) 2021.02.22
어지러운 마음  (0) 2021.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