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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제 3의 인물

삼주만에 집에 돌아온 날

병원에서 나오던 순간도 감격적이었는데, 조리원에서 나오던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바깥 세상을 처음 보는 아기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새롭게 보이는 기분이 든다. 신생아실에서 곱게 싸주신 겉싸개를 폭 안고 차에 타서 조심스레 운전을 시작하는 순간. 아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차창 바깥의 지나가는 광경을 살피고 돌연 조용해지는 순간. 나도 새삼스레 하나씩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작은 도로도, 하늘과 가로수와 늘 건너던 한강도, 강변북로도 모두.



집에 오는 첫 순간을 오래전부터 고대했다. 앞으로 우리가 그려낼 삶의 모습들이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집에 오자마자 안방에 있던 아기침대를 꺼내어 거실에 옮겼고 그 위에 아가를 눕혔다. 선물받은 침대가 온 것도 3개월이 넘었지만 그간 한낱 덩치 큰 가구일 뿐이었는데 아가를 그 위에 눕히자마자 완벽하게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우리집에 이런 광경이 있을 줄이야!!

아기가 자는 동안 피곤한 줄도 모르고 물건들을 분주히 세팅했다. 그동안 귀엽다고 감탄만 했던 아기옷을 꺼내 입혀보고 더 귀여운 모습에 감탄하고 모자도 씌워보고 양말도 신겨보고 사진도 찍고 이 모든 과정이 찐 행복이었다.


한 켠에는 택배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출산예정일에 병원 갔을 때 수술도 할 수 있다는 말에 그날 밤 산후복대를 인터넷으로 주문했었는데, 주문 시간으로부터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모든 출산의 과정이 종료되었다. 그 새벽 이후 3주간 집을 비웠기 때문에 그 이후에 도착한 모든 것이 집에 차곡차곡 쌓였다. 신생아에게 필요한 물품 주문한 것들, 그리고 출산 소식을 전한 이들에게 또 한바탕 도착한 선물들. 임신 축하 선물 포스팅을 업데이트 해야겠다. 고마운 분들이다.

집에 오니 점심무렵이었는데, 남편이 날 불러 아기를 보고 싶어하실 것 같으니 친정엄마께 연락해보는게 어떻냐고 했다. 아무리 쿨한 집구석 분위기라지만 정작 딸인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엄마와 늦은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아가도 깨고 집정리도 안되어 이것저것 분주한 와중에 엄마는 사촌오빠네서 받은 장난감을 또 한 짐 짊어지고 나타나셨다. 한껏 더 부산스러워진 분위기에 얹어 엄마가 점심으로 준비한 메뉴는 등갈비 김치찜. 고기를 해동하고 김치를 꺼내고 난리가 났다. 지켜보던 내가 수유 때문에 나는 매운 거 못 먹는다고 했더니 괜히 나 때문에 맛없게 고춧가루도 못 넣는다고 남편한테 뒤에서 한마디 나누신다. 하하.. 하긴 병원에 있을 때도 부모님이 아기 보러 면회 오셨었는데 출산한 난 패스하고 시크하게 집으로 돌아가시긴 했다. 당사자인 난 서운하기보다 그분들의 저세상 쿨함에 늘 감탄하기에 다행이지. 우리 부모님 너무 잘알.

신생아실 선생님들처럼 속사개를 이쁘게 매질 못해서 무적의 스와들업을 꺼냈다. 물려받은 스와들업 S사이즈 간절기용이 있어서 입혀봤더니 딱 맞아 좋았다. (그리고 하루만에 좁쌀같은 태열이 얼굴에 잔뜩 올라왔지만) 그리고나선 구석에 쇼핑백 한가득 담아놓은 젖병부터 꺼내어 분류했다. 선물받은 자동분유제조기에 분유도 털어넣고 가동도 처음 해봤는데, 와우 이거슨 신세계...!!!

내일부터 목욕도 시켜야 하니 택배박스 더미에서 로션과 바디워시도 찾아서 개봉했다. (그리고 나머지 쌓인 택배박스를 다 뜯는데까진 3일이 더 걸렸다. 신생아란 신생엄빠에게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줄리가 없던 것이었다. ) 육아 지식이라곤 일천한 우리들에게 이제 진짜 도전의 시간이 열렸다.

3주만에 집으로 처음 온 아가는 온도습도조도가 다 바뀐 환경과, 안기도 어설퍼하는 엄빠의 품에서 저녁무렵엔 칭얼댔지만 그래도 밤엔 잘 자 주었다. 내일부터는 산후도우미 관리사분께서 오시니 그래 오늘만 좀 잘 버텨보면 어떻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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