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오는길에 사람들 만나서 담배라도 피고 왔는지 실실거리며 들어오는 얼굴에 화가 확 났다. 나는 당사자도 아닌데 왜 화를 내냐고 한다면, 아마 진양과 유나 사이에 끼었던 그 사건처럼 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이없어하던 사람들도 지금쯤은 다 잊고 그냥 또 털어버렸겠지만, 나는 여전히 미안하고 민망하고 실망스럽다.
그 와중에 같은 팀 언니가 아침먹었냐고 와서 아무 생각없이 물어본는 게 또 화가 났다. 도대체 자기 일이라고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건가. 이런 곤란한 상황에 어떻게 하니 괜찮니, 그래도 이렇게라도 끝나서 다행이다 식으로 얘기를 꺼내볼 생각은 한번조차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런 생각이 들기나 했을까.
책임의식인지 주인의식인지 오지랖인지 개인주의인지 뭐 어쨌든 그거 큰일이네요 라는 표정으로 내내 일관하는 대리님은 원래 그럴것 같아서 기대하지 않기도 했지만, 설마 이정도일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야하는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것도 서로 말 꺼내기 두려워 피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딴청을 피면서, 특히 제가할께요. 라는 말에 . 오오 ~ ? 라는 반응은 정말 치사했다. 그렇게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쳐다보고만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경력으로든, 짬으로든 가장 오래된 대리가 어떻게 그러고 가만히 있기만 할 수가 있지. 그리고 끝나고 나서 불평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역시 이런건 하면 안되었어. " 그건 누구라도 안다. / 반면 " 표정들 정말 안 좋네요. 오늘은 정말 욕좀 먹겠다. " 라고 하는 건. 여기서의 우리팀 공동의 잘못(및 나의 잘못)을 인지하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차장님은 나에게 아침에 전화하지도 않았고 , 결국 그 발표를 대신한건 내가 아니었는데도 왜 내가 화를 내느냐. 라고 반문한다면, 나는 분명 화는 나 있다. 왜인가. 안 그래도 민망한 부탁하는 자리에 되도않는 변명까지 늘어놓는 시추에이션을 내가 맞이한 억울함 때문에? 잠깐이나마 대타로 뛰어야하나 쫄리는 상황이 되서? 그도 아니면 그냥 팀 전체적으로 끼친 영향으로 봤을 때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장 후자는 한 개인의 어떤 행동에 대한 '절대적 옳고그름' 에 대한 화랄까. 나를 포함한 누구라도 판관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상대성을 논하기 전 '잘못됨'에 대한 분노라면 나는 굉장한 열혈분자임에 틀림없다.
한편으로는, 상사가 하달하는 명령에 내가 이렇게 화를 내도 되는 입장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건 차장님이 평소에 권위적으로 명령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어느정도의 기대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애초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고,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에 비난의 정도도 적었을 것이다. 그만큼 인정하는사람이라는 뜻이긴 하지만, 기대치가 다른것은 사실 내가 세운 기준인데. 그것을 적용해서 화를 내고 말고 하는 것은 그분 입장에선 억울할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너무 익숙해져서 잊고 있지만, 이 모든 게 무엇으로 발생했느냐 생각해보면, 자주 일어나는 근태불량으로 인한것. 본인이 접고 들어가야 하는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화를 내도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지금 이렇게 드는 불만들을 자꾸 적어내려가는 것이 누구를 위한 해결인지 알수가 없다. 이렇게 토해놓는 건 일단 나의 내적평안함을 위해서.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데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있으면 나는 쌓이고 남은 모른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불만을 표할 수도 없으니 가볍게 센스있게 화두를 던지는 것 정도로. 이렇게 꺼꾸로 생각해보니 '말해야 알지!'라고 말하는 건 대단히 무식이 용감한 상황이다. (화려한 전적의 나라서 할수 있는 말이다)
여하튼 아무도 이 상황에 지금 나만큼 신경쓰고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겸연쩍다. 세세한 것까지 배려한다는 건 피곤한 일이기도 하면서, 감성적인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 없던 면을 배워가는 일이기도 하고.
나에겐 대타 할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나머지 대리님한텐 묻지도 않았다. 차장님은 평소같으면 나에게 했겠지만, 이번엔 전화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해야한다고 정해진 건 없었지만 암묵적으로 우리 모두다 내정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하지 않았다면 내가 했었어야 했을 거다. 순발력이 떨어지느니 어쩌느니 해도 어쨌든 한 몫을 해낸다는 건 한 사람의 깜냥이다. 내가 그럴만하느냐 , 분명히 일인 몫을 단단히 해내느냐. 든든하냐 라고 자문하면 자신없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다. 내몫도 해내지 못하면서 무슨 할말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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