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Book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Nangbi
2022. 8. 26. 16:51
잘쓴다 잘써. 감탄사가 절로 나옴
심시선씨 재미있는 사람이었네.
줄거리를 만들기 위한 불필요한 꼬임 없이
심플하고 잘 구상한 소재 하나를 향해 달려가는 게 좋다.
대화와 행동 서술 때문에 정수의 문장이 나오기 힘든
소설 특성이 있음에도,
장을 시작할 때마다 심시선씨의 칼럼을 배치해놓아
문장의 갈증을 해소하게끔 했고
그것으로 겪은 사건과 본인의 소회와 평소 신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유로이 넘나드는 그 기법이 매우 근사했다.
하와이에서 할머니의 제사를
각자 추억하는 방식으로 올리는 것.
이상한 조합인데다 하와이라니 처음엔 안 와닿았지만
읽을수록 그럴법하게 현실적이고
내 경우까지 자연스레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집안이라 나도 끼고 싶었다.
내가 속한 가계는 어떤지 생각해보았다.
비슷한 일도 해보고 싶었다.
정세랑씨 글솜씨 좋다. 다른 책도 읽어봐야지.
예민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건 압니다. 파들파들한 신경으로만 포착 해낼 수 있는 진실들도 있겠지요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 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자살을 닮았을 테고요. 그래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지금으로 향하는 내 안에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어릴 때는 그 삶을 원했던 적도 있는 듯 한데 이제는 이 삶이 아닌 삶을 상상할 수 없으니 짐작 불가능한 시간을 저도 모르게 통과 해온 셈이었다
아빠와 두 엄마를 생각하면 각기 다른 마음으로 슬펐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면 슬픔이 일상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마우어에게 분명 말했는데도 마우어가 나를 그의 ‘하와이안 걸’로 불렀던 것은 나에게도 하와이 사람들에게도 무례한 대접이었다.
어울리고 맞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게 아닐까도. 행운이 불운을 상회 할리 없었다
21세기 사람들은 20세기 사람들을 두고 어리석게도 나은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몰아세우지만 누구든 언제나 자기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온전한 상태인 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천 수백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 하는 것.
나의 애방. 내가 만난 중 가장 놀라웠던 사람. 지지부진한 것에 극적인 전환을 만들던 힘. 나는 따라 죽지 않고 애방을 기록 하는 편을 택했다. 내 심장이 그리하도록 견디어 주었다.
누가 이 기록을 읽을 것인가? 문명은 결국 모조리 흙에 묻힐 테니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장미보다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이 땅에 이십만년을 살았는데 장미는 사천만년을 살아 왔다는 걸 아는지? 물론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생긴 장미였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직접 화석을 보고 싶다. 장미 화석을. 그리고 최초의 장미는 바로 이 근방에서 동아시아에서 피어났다고 한다. 일단은 무더기 장미 아래 무덤들을 지키고 섰다. 술래 역할을 하고 나면 함께 누울 것이다 꽃잎 아래에, 흙 아래에, 눈 아래에. 나 다음의 술래에 대해서는 짠한 마음이 있다.
오래된 땅을 파들어가는 사람과 새 땅의 표면을 살피는 사람이 그렇게 작은 선물을 교환했다. 명은이 멋진걸 찾았다고 메세지를 보내자 모두 가벼운 조바심을 느꼈다.
어찌되었든 물고기도 번식 이상의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어떤 날 외로움을 약간 덜어준다.
나는 세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해. 남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이랑 자신이 잘못하는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 후자쪽이 훨씬 낫지.
명혜는 선생님의 훌라를 따라하는 것처럼 발음을 따라하고 생각을 따라 했다. 제대로 따라 하기엔 짧은 기간이었고, 영원히 그 정수에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아 슬퍼졌지만 그 슬픔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연결되지는 못할 거라는 깨달음 말이다.
여기가 천박한 시장 바닥이 되는 걸 막으려는 사람들은, 착취적이지 않은 진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로컬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예술계의 실패와 성공이 모두 큰 것은, 그리고 성공 쪽이 훨씬 드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영영 그럴 테지요.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절박한 안위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술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천천히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제가 얼마나 자주 봤는지 아십니까?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수준의 자해입니다. 이사람 큰일났다 싶을 땐 늦었고 곁에서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디다. 큰 회사에 다니고 가업을 잇고, 대단한 돈을 거머쥐고, 다정한 반려인이나 귀여운을 얻고 나서도 무언가 안에서 그네들을 갉아먹습니다. 기생충이 먹을 게 없으면 내장을 파고들듯이요. 수집가나 애호가가 되어 욕구를 해소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습니다. 결국 일에도 뜻이 없어지고 주변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저보다 훨씬 가난한 예술가들 곁에서 머물며 소비만 하다가 자기 자신도 소모해버립니다. 주로 술과 도박과 별의별 파괴적인 것을이 끼어들어 소모를 가속시키고요.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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