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 김영민

이정도 거창한 제목을 달게 된 이유는 저자가 예전에 ‘추석이란 무엇인가’ 라는 칼럼으로 히트를 친 이력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 칼럼 나도 읽어봤는데, 명절을 앞두고 가족간 싸움을 줄이기 위해 명랑하게 주위환기를 시키는 내용이었다. 요새는 그런 기사를 철마다 보아서 신선할 법도 별로 없지만 그땐 그 칼럼이 나름 힛트작이었겠다.

교보에서 둘러보다가 강렬한 제목에 눈길을 빼앗기고 한번 들춰본 목차에서 흥미가 당겼던 책. 소제목들은 재미있겠고 문체는 유머러스하였다 (이번 책은 유머가 다소 과했다고 평하는 팬들도 있던데 공감한다)

지적 흥미에 관한 책들은 늘 구미가 당기는데 그것이 나의 결핍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대학생 때 보았으면 더 좋았으련만. 대내외적으로 공식적 글쓰기가 필요했던 당시보다 오히려 취미생활에 가까워진 지금 보기에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도전적 제목에 비하여 하나하나의 글들은 소재만 던지고는 가볍게 마무리 되어 조금 의아했다. 근데 에필로그에 보니 이 글들은 중앙sunday에 일년반 정도간 연재한 칼럼 모음이라고 하여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어느 휴일 아침에 뉴스 사이에서 이런 흥미있는 소제목을 골라 클릭했던 것도 같고.

지금의 내게도 의미심장했던 몇 부분 캡쳐.

비판을 하는 사람은 어떤 덕성이 필요한가
첫째 상대 주장의 약점 보다는 강점과 마주하여 비판적인 논 의를 해야 한다 상대의 핵심 주장에 강점이 있음에도 상대가 보인 약점에 탐닉한 나머지 그것을 상대의 본질이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 상대 주장에서 강점을 영 찾을 수 없으면 이토록 형편 없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발표 하는 용기 자체를 칭찬 하면 된다

둘째 비판을 불필요하게 길게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자신의 평소 입장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나는 것은 금물이다 주인공은 당신의 비판이 아니라 상대 발표다 그러나 비판을 간략하게 한답시고 가능한 대안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 가능하다면 건설적인 제안이나 대안을 제시 해주는 것이 좋다 동시에 상대방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자신의 대안이 곧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멍청한 주장에 대해 더 멍청한 비판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상대 주장을 검토 할 때 보이는 엄격성을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도 유지 하는 것이 좋다.

셋째 불필요하게 공격적인 언사를 남발해선 안된다 작업에 대한 평가와 작업자에 대한 평가를 가능한한 구분 한다 그래야 비로소 상대도 건설적인 비판과 인신공격을 구분 할 수 있게 된다

늘 티끌같은 부분(오타)에 잘못을 지적하는 행태를 보이는 나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다. 상대 의견의 강점을 찾아 강점에 문제가 없는지 비판적으로 사고해보는 것.

자기 견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
토론이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것. 견해가 없으면 토론이 아예 시작 될 수도 없다. 꼭 견해를 가져야 하느냐고? 삶의 의지가 있는 인간들은 대개 자기 인생에 대해 변명하기를 원한다. 자기 합리화에 몰두한다. 그런데 자기 합리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도 안 씻지만 나는 그가 좋아“라고 말하는 것과 “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도 안 씻지만 청결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불결한 사람을 좋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불결한 사람을 청결하다고 공적으로 주장하면 많은 이들이 분노 할 것이다. 못생긴 사람을 좋아할 수는 있지만 못생긴 사람을 미남이라고 주장하면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처럼.

토론의 장은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다른 의견을 긁어모아 취향의 박물관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토론의 목적은 다양성을 무한정 확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취합 하여 좀 더 나은 지점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과 타당한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토론에서는 취향을 넘어선 공적인 견해가 필요하다 김소연 시인은언젠가 “저는 언젠가 수정 하더라도 항상 견해를 가지려고 노력 합니다” 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런 태도가 토론 참여자에게 필요하다. 견해를 갖지 않으면 맞지도 않겠지만 틀리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발전의 여지가 없다

나도 앞으론 견해있는 여자가 되어야지. 그럼 틀릴 때도 있겠지. 그 비판도 받아들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친구가 딸래미에게 덕담으로 ‘용감한 아가씨가 되렴’이라고 했는데 나부터 좀 되야되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