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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제 3의 인물

친밀함이 깊어지는 밤 아기는 밤에 가끔 자다가 깨서 운다. 대체로 잘 자는 편이지만 새벽시간에 깨서 한참 울때는 같이 자기 시작했던 엄마가 곁에 없다는 걸 알 정도로 깨버렸을 경우다. 그럴 때 문을 살금 열고 들어가보면 어구컴컴한 방 구석 침대한켠에 일어나 앉아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오늘도 아기가 울었다. 내가 들어와 매트리스 위에 눕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아기는 자기 이불위로 풀썩 엎어졌다. 그리곤 잠시 뒤에 벌떡 일어나서 내가 살짝 열어둔 방 문을 꾹 눌러 닫고 다시 누웠다. 요샌 아기는 거의 문을 닫고 자는 편이긴 했지만 왠지 내가 뜨끔하다. 가끔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아직 푹 잠들진 못한 것 같다. 사실 소환되기 전 난 잘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렇다. 클렌징과 양치를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더보기
봉변 당한 아기 간만에 날이 따뜻해서 오후에 아기와 둘이 한강에 나갔다. 요새 아기는 돌 줍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원 없이 줍고 또 주웠다. 손에 그득 쥐고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바닥도 못 짚고 다칠까봐 줍는 족족 받아 내 패딩 주머니에 보관해줬는데 덕분에 내 왼손은 돌무더기 주머니에 찔러넣을 수 없어 하릴없이 시려웠더랬다. 한참 줍고 걷던 중에 반대쪽에서 한 아주머니가 운동하듯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셨는데 아기가 그분께 갑자기 다가가 손에 들었던 조그만 돌멩이를 건넸다. 아는 사람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미처 말릴 틈도 없어 당황. 그러나 놀란 건 나 뿐인지 아주머니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살짝 허리를 굽히고 왼손을 펴 돌을 받고는 “고마워”하고 싱긋 웃은 뒤 돌이 든 주먹을 가볍게 쥐고 오던 .. 더보기
재우기 미션 임파서블 잠을 잘 때 아기는 양손에 엄마 아빠를 거느리고 침실로 들어선다. 자자고 들어는 왔지만 잠은 아직 멀고 먼 일. 아기는 졸려도 자고 싶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놀거리를 찾는다. 하지만 상호작용을 원하는 아기의 기대와는 다르게 우리의 할일은 자극을 줄이고 아기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 손으로 부드럽게 아기의 배와 다리를 감싸안고 이불을 덮어 토닥이면서 궁극의 자는 척에 돌입한다. 파닥거리던 아기의 움직임이 잦아드는 것 같으면 너무나 궁금해서 실눈을 뜨고 동태를 살피지만 자칫 아기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서둘러 다시 감는다. 지루하게 늘어지는 시간. 어두운 방 안에 엉켜 누워있으면 없던 잠도 찾아와 한번에 무너질 수 있다. 조용한 가운데 주기적으로 쪽쪽이를 세차게 무는 소리가 들리면 잠이 온다는 신호다. 조금.. 더보기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 역 근처 스벅에 들러 라떼를 한잔 시켜놓고 남편을 기다리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커피를 픽업하고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는데 골목을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가 아기를 보곤 흐뭇한 표정으로 오시더니 갑자기 지갑을 여신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 거절할 틈도 없이 서둘러 자리를 뜨시는 바람에 반 접힌 천원짜리가 한장은 아기 손에 한장은 바닥으로 팔랑이며 떨어졌다. 흡사 구호와도 같은 그 문장이 조금은 거창하여 웃음이 나왔는데, 그래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한사코 아니라 부정하기도 그렇고 결국 2천원을 손에 말아쥐고 유모차를 힘주어 밀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끝나고 주변을 돌아다니다 가끔 내 외할아버지를 길에서 뵌적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항상 할아버지는 지갑을 꺼내어 이만원 삼만원씩 내게 쥐어주셨었.. 더보기
나는 어렸을 때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콩이었다. 그 중에서도 검은색 서리태 콩. 엄마가 밥에 콩을 섞어주면 몰래 콩만 먼저 꿀떡꿀떡 삼켰었는데 덕분에 알약을 잘 삼키는 목구멍으로 단련되었지. 남편도 콩을 썩 좋아하진 않아서 결혼 후 우리 식탁에서 콩은 거의 자취를 감췄었다. 그런 우리에게 콩순이가 태어날 줄이야..! 더보기
잠버릇 아기는 잠이 들 때 이불 끝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다. 차렵이불의 겉감만 살짝 들어올려 꼭 중지와 약지 사이에 넣고는 조그맣게 원을 만들어 살살 굴리면서 부드러운 촉감을 느낀다. 아기의 잠버릇을 알고 나서 우리는 아기의 손가락 앞에 이불 끝자락을 열심히 대령하기 바빴다. 여행을 할 때도 애착이불을 가지고 다니면 쉽게 잠이 들었다. 어느날 아기의 이 모습을 보고는 부모님이 놀라며 말씀하셨다. 너도 어릴적에 손가락으로 이불 만지며 잠들었는데 어쩜 닮았냐며. 그러자 오래된 기억이 파듯 떠올랐다. 갑자기 어릴적 이불 무늬 감촉과 색깔까지 선명히 기억이 났다. 맞아 난 손가락 사이에 이불 자락을 끼는 걸 좋아했었지. 가끔 발가락 사이에도 이불을 끼고 옴싹이며 놀곤 했다. 마치 간지러운 곳을 긁듯이 말.. 더보기
우리는 서로 모른다 남편이 밤잠을 재우러 들어갔는데 아기가 몇십분째 계속 운다. 전에도 울다 지친 아기를 결국 어떻게든 재우고 나온 적이 있긴 하나, 이렇게 울다 자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자기전 되도록 진정하게끔 잘 토닥이면 좋겠는 마음이지만 저 울음이 엄마가 아닌 사람에게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라면 내가 할말은 없다. 어젯밤에도 새벽에 깬 아기가 엄마를 찾는 바람에 한시간 넘게 아기를 다독이다가 두시반이 넘어 자는 걸 봤다. 남편은 엄마가 되어보지 못해 나의 고단함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아닌 자의 설움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더보기
커튼을 열어주세요 아기와 나, 둘이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면 대개 아기가 먼저 일어나 침대 곁에 서서 내게 놀자고 조른다. 그럼 난 아기를 침대위로 안아올려 아침인사를 하고, 조금 부비고 놀다가 침대에 엎드린 채 머리맡 암막커튼을 함께 열어젖힌다. 그리곤 아침 햇살을 맞이하며 아기와 날씨가 어떤지 이야기한다. 오늘 아침엔 “날씨 어때? ”라고 물었더니 아기가 커튼을 여는 시늉을 했다.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당연한 행동이 아기와는 하나하나가 신비함의 연속이다. 우리 한발짝 한발짝씩 대화가 통하는 기분이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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