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urnal & Pic/Alone

(80)
몸과 마음이 지치는 날 몸과 마음이 지치는 날이다. 내가 옆 사람과의 적당한 업무적 거리가 이렇게나 필요한 사람인 줄 몰랐다. 부서내 발령난 사람도 같이 일하기에 있어 이렇게까지 가려가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된 줄 몰랐다. 내 타이밍이 준비되지 않으면, 윗사람의 지시든 아랫사람의 질문이든 지속적으로 대응하는 걸 힘겨워하는 나인 줄 몰랐다. 나름 민주적인 소통을 하고 짜증을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빌어먹을 타이밍 때문에 아랫사람을 눈치보게 만드는 사람인 줄 몰랐다.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답 내놔라 늘어놓는 질문에 폭발하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그런 사람이 본인만의 고민없이 앉아있는게 눈에 보이게 되면 그렇게나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인 줄 몰랐다.
거참 소심하고 예민하네 나이가 들면서 예민해지는 건지 소심해지는 건지 , 거침없는 언변에 남몰래 상처받는 나를 자주 본다. 마음이 계속 쓰이고 속상하다면 내가 소인배처럼 너무 집착하는 건지 그녀가 너무 상처주는 말을 한건지. 그걸 꺼내어 말하면 별거 아닌데 거참 예민하네 라고 할지 두렵다. 어떤 이의 말하기에 한구석한구석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생기고 그럼 그걸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 친구와 그만 만나야 하는지 고민이 생긴다. 입을 다물수록 슬프고 속상하다.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이 든 뒤에, 오후 내내 쉽사리 털어내지 못하고 뭔가가 응어리지게 되기 전까지 계속 신경만 쓰고 마음만 졸이는 내가 솔직히 좀 싫었다. 상처받은 마음이 괜찮은 척 하는 것이 남몰래 물밑에서 이렇게나 치열한 과정을 거치는 줄도, 예전엔 몰랐던 나였다...
매미 우리집 고양이는 어렸을적에 밖에서 놀다가 가끔 뭔가를 물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어. 어린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건드리는게 많거든. 그날도 평소같으면 문 열어달라고 현관에서 앙칼지게 울었을텐데 , 소리가 좀 답답하고 푸드덕 거리는 소리도 간간히 들리는게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별 생각없이 문을 열었어. 문이 열리는 걸 보자마자 고양이는 용수철처럼 튀어들어와 훈장처럼 자기가 잡아온 뭔가를 거실바닥에 내려놓았는데 난 그 시커먼 것에 기겁을 하고 몇발짝 물러났지. 고양이는 꼼짝도 않고 주인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기다리는듯 날 빤히 쳐다보는데, 바닥에 내려놓은 날개가 한장 뜯어진 매미는 죽을 힘을 다해 앞으로 기어갔지만 계속 원을 그리면서 돌아서 결국은 제자리만 뱅뱅 돌 뿐이었지. 그 매미를 보면서 난..
전투력 출근하자마자 그놈의 업체가 또 말썽이다. 지난밤의 논의가 끝나지가 않았다. 우리부서에서 기재부에 보낸 확인 메일 답변이 오늘까지 오지 않으면, 법무법인이 대리로 영업점에 나가서 만드는 계정을 기어이 비거주자원화계정으로 만들겠단다. 그것이 외국환거래법 위반사항의 여지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본인과 본인 클라이언트는 엄밀히는 상관없지 않냐는 변호사의 논리에 난 반박하지 못했다. 에스크로 계약을 앞두고 비거주자의 세금이동과 관련하여 여러경우로 발생하는 생황과 그에 맞춰 짜놓은 구조를 우리가 미리 예상하고 확인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고, 전체적으로 양도세 에스크로 관련 발생할 수 있는 계정문제 자체를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했다. 외국환거래법은 은행 실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어서 우리(은행측)이 답을 내야한다..
지점장 2년 반동안 나의 일기장에 아주 많이 등장했던 인물 중 하나인 지점장님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른 영업점으로 발령이 났다. 글쎄 이 인물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나. 애증이라고 해야되나. 애는 애같아서, 증은 말 그대로 증이다. 입이 아플정도로 부서사람들이 늘 이야기했던 안주거리. 다시 나열할 필요는 없다. 되짚을 시간조차 아까우니. 축구선수에게 감독이 어떤 존재인지 가끔 중계에까지 비춰질 때가 있다. 어떤 유명한 감독과 어떤 유명한 선수. 누가 누구를 이뻐하고 누가 누구의 눈에 들려 애를 쓰며, 감독의 존재감과 선수의 존재감이 교차되기도 한다. 어떤 선수는 감독에게 반항하면서 태업을 하고, 우리팀이지만 망해라라는 무언의 시위를 하기도 한다. 영업부에서 이 부서로 떠나오던 날이 내게는 아직도 생생한데, 그날의..
돌아와서 일상으로 돌아온 첫 출근일. 사람들은 똑같이 붐비고 , 세상은 흘러간다. 마치 꿈을 꾼 것이 아닌가 아침에 일어나 다시금 되짚어 생각하고 슬픔에 잠기는 것도 이제 조금 익숙해질 지경이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이 휴가 포함 열흘 남짓. 무언가를 정리한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없었다면 그냥 모든 것을 내팽개쳐버리고 방안에 주저앉아 울기만 해도 부족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상투적인 말이 이만큼이나 유용한 말인지 몰랐다. 그래 ,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어떤 것이든 정신을 팔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을 하였다. 늘 아까웠던 시간인데, 지금만큼은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흘러가게 내버려두었다. 그럼에도 너무 벅찬 슬픔은, ..
질문하기게임 최약체 오후 집중력을 더해줄 커피를 뽑으러 간 탕비실 앞, 황과장님과 간단히 나눈 10분여의 대화속에서 나는 그녀의 가벼운 호기심(본인은 모르는 자의 오지랖이라 하였지만)에조차 대응하지 못하여 버벅였다. 그녀의 질문에 횡설수설하며 얘기하던 중간에 오류를 깨닫고 다시 내 대답을 화급히 정정했다. 이러한 복잡한 거래구조의 업무에서 모든 작은 가능성까지 상상하고 답을 미리 내려놓는 그러한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상상력이든 꼼꼼함이든 어떤 이름을 달았든지간에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임은 분명해보인다. 나는 예상조차 못한 질문을 , 그것도 다른 업무의 주 담당자가 , 그것도 커피뽑으면서 떠올릴 줄 아는 건 다 뭔가! 짧은시간이었지만 감탄한 나는 돌아와 몇분후 그녀에게 감동의 톡을 보냈다. “과장님은 쟁점 캐치가 빠른거 같..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왔다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왔다.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할머니는예전과 변함없는 모습이고 담담한 표정이었다.분명한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하셨다.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모든걸 정리할테니 당신을 도와달라고,다른이들은 다시 보지 않고 마지막은 혼자서 맞이하겠다 했다.여전히 담대한 모습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품에 꼭 안았다.작아진 키의 할머니의 이마가 내 턱끝에 와 닿았다.그 이마는 주름살 하나 없이 매끈하고 팽팽했다.할머니를 이렇게 안아본 건 처음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