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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일상

테니스 일기 4. 내가 볼 머신은 아니잖아.

테니스 레슨을 시작하며 나는 남편이 배우던 코치님께 자연스럽게 인계(?)를 받았다. 남편은 한강공원의 테니스장에서 배우다가 일년쯤 뒤에 지금 배우는 강변 테니스장으로 레슨을 옮겼는데, 예전 코치님은 젊고, 선수출신이었지만 지금 코치님은 전 직장인, 그리고 나이가 꽤나 지긋하신 분이었다.

환갑은 훌쩍 넘으셨을 듯한 코치님이 옛날 방식으로, 설렁설렁 가르쳐주실 것 같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이 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워커홀릭'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공을 정말 많이 쳐주신다.

보통의 테니스 레슨을 찾아보면 총 30분. 그중에 20분-25분 정도 공을 치고 앞뒤로 5분씩 공을 줍는다. 레슨 중에도 설명이나 자세교정 혹은 시범 때문에 시간을 들이게 마련인데 이 분은 별로 그런게 없다. 너무 헤메 정 안되겠다 싶으면 멈추고 다가와 설명을 좀 해주시지만, 대개 공을 치면서 스스로 감을 찾게끔 도와주시는 타입. 땀 닦을 시간도 없이 공이 계속 날라온다. (힘들어서 어물쩍거리고 있으면 멀리서 째려보는게 느껴짐) ​​보통 카트(마트에 있는 그것) 한개에 가득 담긴 공을 다 치면 레슨이 끝나는데, 애매하다 싶으면 두번째 카트도 동원되고, 그거 다 치고 공 주워서 또 친적도 있다.​


2. 뒷 사람이 없으면 레슨 시간이 무한대로..

30분 단위로 짜여진 레슨일정에 뒷사람이 좀 늦거나 비어있으면 레슨이 도통 끝나지 않는다.. 근데 뒷사람이 있는지 여부는 내가 알수가 없어서(개인 예약이라 요일이랑 날짜가 계속 바뀜) 어느날은 30분, 어느날은 50분, 최대 길게는 70분도 쳐봄. 근데 테니스 레슨이 30분인 건 다 이유가 있는게 운동량이 상당해서(+ 내 체력이 하위급이라) 그 정도면 벌써 힘이 빠지고 지치기 때문이다. 어느날은 뒷사람 빨리 오라고 맘속으로 빈적도 있다.  


3. 어떻게 조율해서든지 시간을 만들어내어서 레슨을 해주시려고 한다.

나는 레슨을 주2회 아침 10시반에 받는데, 그 시간에 불가피한 개인 일정이 있어서 빠지게 되면 오후에 오라든지, 다른 요일에 오라든지 해서 꼭 레슨을 채워주시려고 하는 편이다. 아침에 너무 짧게(30분) 치면 오후에도 나올래 해서 하루에 두번 레슨받기도 했다. 처음 배울때 진도가 잘 안나갈때는 주2회 이외의 다른 요일에도 나오면 레슨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하시기도 했는데 내가 일주일에 3-4회는 부담되서 거절했다. 지금 레슨받는 이 가격도 진짜 가성비 갑오브갑인데 코치님의 열의와 열정이란 .. 휴 제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슨상님..  

몇주 전 어떤 날은 시간계산이 잘못되서 코치님이 내 레슨 중에 4차백신을 맞으러 병원에 가셔야 했는데(그래도 이미 30분 친 시점이었음), 옆코트 동호회 회원님께 나 잠시 공좀 쳐줘라 하고 병원에서 20분만에 돌아오셔서 더 레슨해주신 적도 있다. 오마이갓  ​    


초반에 내가 제 자리에 서서 공을 너무 못 받아내는 게 답답해서 주변으로 오는 공이라도 좀 쳐서 리턴확률을 높여볼까 하고 옴싹하다가 한소리 듣고는, 옆에거 치고 싶은데 안닿아서 못친다고 대답했더니

"나도 고 옆에 주려고 치는데 몇 개는 빗나가기도 하는거야. 내가 볼머신은 아니잖아"

아니요. 볼머신 맞는 거 같아요. 코치님. 느무 힘드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