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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제 3의 인물

임신일기 4 - 뭐 먹고 싶은지 그만 물어봐도 돼요. 입덧이 없그등요.

초음파 사진과 더불어 임신 클리셰의 최고봉 입덧.

담당 원장님이 6주차쯤 되었을 때 입덧이 없냐고 물었었는데, 그땐 아직 안 온줄만 알았다. 생각지도 못했지 마지막까지 없을 줄은.

당시 입덧이라고 이렇다할 뚜렷한 증세는 느끼지 못했지만 기분 탓인지 조금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즈음 저녁 들른 껍데기 집에서 후식으로 시킨 닝닝한 냉면이 엄청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몇일 지나지 않아 조금 분명한 증세가 생겼다. 먹을 것이 한번에 많이 먹히질 않는 증세. 저녁으로 샐러드, 두부 반모, 묵 한 줌을 데쳐서 간단히 상을 차렸는데 한 두어개 집어먹고 먹히질 않아 죄다 버린 적도 있었다. 내 요리가 맛이 없는 건지, 입맛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이후에도 분명 충분한 양이 차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에, 숟가락을 놓는 경우가 많았다. 대식가에 소나기밥 스타일로 먹던 나였기 때문에 좋아하는 반찬 앞에서 깨작거리는 것이 남에게도 나에게도 영 어색했다.

한편으로는 갑작스레 찾아오는 공복에 속수무책인 증세도 생겨났다. 뭔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섭취가 지체되면 삼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지러움과 탈수 현상이 찾아왔다. 겨울 나며 먹을 것을 찾는 동물처럼 집에 도착하면 남은 힘을 쥐어짜 간신히 체다치즈를 뜯어먹고 당이 잔뜩 들은 주스를 두세컵씩 마시는 식으로 위기를 몇번 넘겼다.

문제는 출근길이었다. 원래 공복으로 출근하던 나였는데, 지하철에서 몇번 혼절할 뻔 하고는 경각심이 들었다. 직장생활 처음으로 안 먹던 아침을 먹었다. 토마토, 바나나, 떡, 시리얼을 먹고 나갔고 갑작스런 탈수현상을 대비하여 물이나 녹황주스 같은 음료수를 가방에 챙겼다.

입덧이 없다는 건 임신 시기의 큰 축복이라 했다. 이정도는 입덧이라 칭하기엔 소소한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 우웩하는 입덧도 과연 하게 될 것인지? 그정도는 되어야 임신 절차 진입이 확인되어 내심 안심할 것 같으면서도 막상 그런 기대를 했다는 걸 후회하게 될만큼 어려운 상황이 펼쳐질까 아무것도 바랄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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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음식과 상큼한 과일은 임신 기간 내내 입맛 돋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망원시장의 야채 과일 가게가 일등 공신.

맥주 욕구를 잠재울만큼 강력한 탄산수 라인 바싸의 도움도 매우 컸다. 휴직 들어가던 날 저녁에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만난 동네친구 ㅇㅇ님이 앞으로 임신기간 내 구원템으로 운명처럼 추천해준 것!! 🙏 뚜껑을 따놓는 것은 기본이요, 다음날 먹어도 탄산이 살아있다는 건 믿기힘든 혁명이었다.

그러던 중 연말쯤이었나, 불현듯 콩국수가 먹고싶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콩을 좋아했다고.. 깔끔한 소면에 달콤한 콩국물 그리고 상큼한 오이를 썰어넣은 시원한 국수가 먹고싶어서 수소문을 좀 했다. 근데 나 콩국수가 이렇게나 계절메뉴인 지 미처 몰랐네? 동네 시장 시내 시장 돌아봐도 유명한 콩국수 전문점은 물론이고, 콩국만을 구하는 것도 적어도 4월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아니 겨울에도 냉면은 파는데 왜 콩국은 ?!!!

이렇게 입덧을 빙자(?)하여 구하기 힘든 계절음식을 남편에게 요구하는 썰은 예상치도 않게 콩국수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나보다 구매에 능숙한 남편은 만능쿠팡으로 하루만에 문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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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 삼개월 전쯤 본점건물로 복귀하면서 인사도 할 겸 소식도 전할 겸 예전 지점 사람들, 동기들, 동문들 여러 직원들과 밥을 먹었는데 늘 질문을 받았다.

“뭐 먹고 싶어? 아기는 뭘 먹고싶대?”
“글쎄요. 저 진짜 아무거나 잘 먹어요.”
“못 먹는 거 있을 거 아냐”
“음... “


확실하다.
임신 전에 비해 먹지 못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입덧과 먹는 것 조절 없이 임신 10개월차에 들어선 오늘까지도 생각보다 몸무게가 많이 늘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건 술을 못먹기 때문...!

맥주야 기다려라 한달 남았다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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