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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일상

프로의 모습을 보여라? (feat 오사카 나오미의 기자회견 보이콧에 대하여)

여자 테니스 세계랭킹 2위의 오사카 나오미가 프랑스오픈 ‘롤랑가로스’를 앞두고 정신 건강을 이유로 모든 기자회견을 거부하겠다고 자신의 SNS에 발표했다. 실제로 1회전 우승 후 기자회견에 참가 하지 않자 프랑스 오픈 측은 나오미에게 만오천불의 벌금을 부과했고 나아가 앞으로 계속 기자회견 거부시 더 많은 벌금은 물론이고, 그랜드슬램 출전 금지(실격)도 강행할 것을 경고했다. 그리고 오사카 나오미는 남은 경기를 기권했다.

https://n.news.naver.com/sports/general/article/022



사회문제에 지대한 관심까진 없는 나이지만, 유독 관심가는 뉴스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그중의 하나 , 오래전부터 자주 생각하게 되지만 정작 답은 잘 내리지 못했던 문제였다. 야구 선수들의 사생활 논란에 대해서 여러 일들이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 프로의 경우(공인의 경우) 어디까지가 공익과 공공재의 영역(팬들의 알권리)이고 어디까지가 개인적인 영역인가?
특히 대회상금을 포함하여 엄청난 광고수익과 후원까지 이 산업의 정점에 서 있는 스포츠 스타의 자본주의적 상품성을 고려해볼때 당사자는 미디어와 팬의 요구에 어디까지 응해야 하고 어디까지 응하지 않을 수 있는지.

2. 인기와 후원(CF)으로 먹고사는 연예인과 프로스포츠 선수는 어떻게 다른가?
같은 공인이라도 프로선수는 본업이 있고, 연예인은 인기가 본질이니 다른 것인가?

CF스타는 그렇다 치자. 배우와 아이돌은 연기와 춤과 노래가 본업은 아닌가? 그렇게 치면 프로스포츠 선수의 본업은 공놀이(구기종목)가 아닌가. F1은 차를 빠르게 타는 놀이, 육상은 빨리 뛰기 놀이, 스키점프는 스키신고 높이 뛰기, UFC는 누가 잘 싸우나 보는 놀이.

무엇이든 빠르기를 겨루거나, (힘)세기를 겨루거나, 높이를 겨루는 모든 스포츠라는 본질적 특성이 인간에게 필수적인 활동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 빠르기와 세기와 높이에 열광하는 보는 이(관중)과 산업이 있기 때문에 스포츠가 존재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면 나오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리처럼 프로스포츠 선수들이라 함은 팬과 미디어를 빼면 그저 자기들끼리의 공놀이에 불과한 것일까.

그럼 만화작가, 소설가, 화가는? 베르세르크의 미우라 켄타로는? 호밀밭의 파수꾼 샐린저는? 생애 한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던 고흐는?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작품과 활동이 아닌가? 예술적 가치 때문에 다른 이야기라고 한다면 만화는 가치가 없고 전통적 회화는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 본업에 전통적인 구분의 잣대가 들어가진 않나?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이 팬이 없는 것과 아이돌 가수가 팬이 없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닌가?

3. 본업이 있다면 용서받을 수 있나?
야구선수는 야구만 잘하면 되고, 축구선수는 축구만 잘하면 되고, 골프 선수는 결국 골프만 잘하면 되는 것인가? 골프는 잘 치지만 인기는 없다면 CF만 안 찍으면 되는 문제인가? 연봉으로 보상받고, 인기까지 있다면 CF수익도 얻고, 그러나 스포츠선수로서 CF적 상품성이 없다면 (호불호가 있다면) 기업에서 선택하지 않을 거니까?

터프하게 말하여 “재롱”이라면 , 옛적엔 검투사처럼 콜로세움에서 싸우던 노예가 현대에는 자본주의로 인해 스타가 된 거라면, 그리고 영향력이란 것도 생긴 거라면, 그럼 지금의 스타도 애초에 내재된 노예근성을 늘 곱씹어 되찾아야만 하는 건가?

내가 돈들여(나의 시간과 관심과 팬질, 미디어 관람, 제품구매로) 만든 스타가 나를 무시할 때, 혹은 되바라진 행동을 할 때, 도의적으로 비난받을만한 개인적 역사가 들춰졌을 때 (학폭이나 개인사) , 나를 실망시킬때?(기준이 너무 주관적이다) 괘씸하니 티비에 안 나오게 해달라.

다른 한편의 이야기는 꼬우면 니가 티비를 보지 말아라.
누구의 입장이 맞는 걸까.

4. 공인도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잘못이란 걸 할 수 있는데, 그때 어디까지 비난받아야 하는가.
위법한 일을 했을 때 / 도의적으로 지탄받을 일을 했을 때 /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서 (위법은 아닌 영역에서) / 개인의 성격 (소극적인 대처)

애매한 경계에 있을 때 어디까지가 문제인가?

승부조작은? 불공적 영역이니 당연히 안되겠지. / 그럼 학교폭력은? / 성인지 감수성은? / 개인 가정사 문제는? /내성적인 성격과 우울감은?

우리는 위법과 아닌 것 사이에서만 문제를 삼을 수 밖에 없는가? 나머지 것들은 주관적인 기준은 아닌가? 도의적인 수준에서 비난할 수는 있지만 벌할 수는 없는 것은 아닌가?

남들도 실수를 하고 자신도 실수를 하니 남과 나에게 좀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처)벌에 공정한 상태인가.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 다시 돌아가 (본업이 있는) 프로 선수들은 대중의 요구에 무조건 응해야 하는 것인가? 나오미를 비난하는 사람 말대로 나오미는 프로이면서 멘탈이 글러먹은 것인가?
흔히 프로는 돈과 멘탈로 정의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돈을 받으니 네 멘탈은 내가 가져갈께 이건가.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스포츠 분야에서 프로라 함은 "프로=돈" 밖에 답이 없는 건가? 내가 돈들여(후원이나 인기나 기업행위 등등을 통해서)만든 스타이니 너는 대중의 요구(혹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일)에 무조건 응해야 한다? 돈받으니 그냥 자기의 모든 것을 대중의 입맛에 맞춰라? 무례한 기자회견이라도? 혹은 후원사의 무리한 요구에도?

멘탈 운운하면 , 혹은 멘탈이 조금이라도 나가면 가만 두지 않겠다? 정신건강에 대해 이만큼이나 이야기 되는 시대에 경기 동기부여적 혹은 경기 내에서 집중력 같은 멘탈이 아니라 경기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적 요소, 공황장애 같은 멘탈을 똑같이 취급한다고? 전자가 (그랜드슬램 4개 이상 먹은) 탑급인데 후자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멘탈이 부족하니 더 키우라고 한다고?

특히 스포츠가 그럴테지만 이기는 것만이 선이고 그 과정에서의 다른 철학들은 무시되는 건가? 나의 동기부여, 혹은 재미있는 경기에 대한 철학은? 다른 프로 분야에 적용하면 행위, 예술, 작품 모든 것에 대한 철학을 포함할 수 있겠다. 대중과 본인의 철학(신념) 사이에서 스포츠 선수들은 유독 승부를 강요받는 것은 아닌가. 승부에 이기지 못하면 정신력부족(유리멘탈)이라고 까기 바쁘니

6. 프로의 모습을 보여라.
남들도 기자회견을 버텼으니 너도 버텨야 한다고 한다. 페더러가 나달에게 계속 지는 것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을 받았을 때도, 나달이 결국 2인자라고 수없이 까였을 때도, 조코비치가 동유럽 출신으로서 불편한 질문을 계속 받았을 때도 그들도 다 그런 시절을 거쳐왔으니까..?

팬이 원하고 그런 막대한 인기와 상금을 누리니 정신적 고통쯤은 감내해여한다?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것인지 기자회견을 보고싶어하는 것인지? 기자회견으로 인하여 경기력이 실제 감소한다면 그것이 팬들이 원하는것인지?
아니 실제로 기자들이 하는 질문이 진정으로 팬을 대변하는 것이긴 한지?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무례한 질문을 하는 걸 싫어하는 팬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지?

말하는 직업이 본업인 사람이 말을 잃었다면 본성을 잃었다고 본다. 테니스 치는 사람이 더이상 뛸 수 없는 사고를 당하면 본성을 잃었다고 본다. 무엇 때문에 열광했는지 생각해보면 본질은 결국 잘 치는 테니스 공놀이 아닌가?

7. 그래서 기자회견이 꼭 필요한가?
한편에서 "기자회견 거부는 곧 팬들을 무시한 처사" 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반응의 차이를 보이는 문제의 핵심 같기도 하다. 나는 일단 왜 모든 사람이 자기 업 이외의 분야에서 말을 잘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무대 공포증이 있고, 언어적으로 순발력이 떨어지고, 대중의 무차별적 공격적 언사를 받는게 두렵고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면 내 본질적 성취를 위해서 거절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내성적인 것이 왜 이렇게까지 공격받아야 하는지? 내성적인데 훌륭하면 그래도 그나마 잘해서 다행이라고 하고, 결국 성격을 극복(대개의 경우 내성에서 외향으로 극복이고, 외향적인 사람이 내성적으로 극복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하면서 성취를 이뤄내면 대단하다고 칭송한다. 외향적이고 분출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손해보지 않으니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그렇게 사회화 시키는 것은 아닌가. 내성적인 것과 프로인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인데, 왜 같이 가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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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 기사를 접했을 때 이후로 다시 알게된 사실은 오사카 나오미가 이번 프랑스오픈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거부한 것은 단순히 호불호로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부분 우울감 증세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원래도 내성적인 성격이며, 2018년 첫 우승 때 관중들의 야유를 들었을 때부터 대중 앞에 서는 것을 공포감에 두려워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우울증이 큰 이유였다고 한다면, 더더욱이나 기자회견을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외과적으로 다치는 부상만이 부상이 아니듯, 심리적으로 다치는 부상도 부상이고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 요새같은 시대에 이게 웬 말이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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