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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사진 없는 일상

머리카락이 건조해도 괜찮은 이유 (feat 겨울철에 린스 안하면 낭패인 이유)

2021.01.17 - [Journal & Pic/ Life2] - 겨울철에 린스를 안하면 낭패보는 이유

어렸을 적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지성을 자랑하던 내 머리카락은 지각한 출근날 아침에 샤워는 포기할지라도 머리는 반드시 감아야 하는 양보할 수 없는 그 무언가였다. 야간기차 타고 도착한 새벽 겨울 러시아에서 체크인도 못하는 호텔 화장실 문 잠그고 3분만에 찬물에 머리감은 화려한 이력도 있었더랬지. 화장은 포기해도 머리감기는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람답게 다니려면-

임신을 하고 나서 몇가지 몸의 변화 중 눈에 띄는 게 있다면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건조해졌다는 것이다. 임신 15주가 넘어갈 무렵이었나, 피부와 머리카락이 대체적으로 건조해졌다는 걸 처음 인지했는데 피부는 뭔 화장품이라도 집어 듬뿍 발라 무마해본다지만 수분이 다 빠져 푸석하게 말라가는 것 같은 머리카락은 당최 어떻게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휴직까지 하고 집에 있으니 다음날 하루종일 안씻고 삼일째를 맞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머리가 윤기없이 헝클어지기만 할 뿐 서로 하나도 달라붙지가 않는 것이다...! 39년 인생에 처음 겪는 현상이다. 어쩜 이렇지???

그러나 끝없는 부시시함이 나날이 증폭, 단발머리 뒷부분 지저분함이라도 없애보려고 커트를 하러 미용실에 들렀다. 지난번 린스드립으로 발걸음을 끊은 D 미용실 이후에 새로 뚫은 망원동의 A 미용실. 오늘이 두번째 방문이다.

"머리 좀 다듬으려구요,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지난번에 층을 좀 친것 같은데, 비슷하게 해드릴까요?"

"네 가끔 묶으니까, 안 묶이기만 않으면 돼요"


대개 1인미용실의 특징은 손이 빠르다는 것이다. 특히 나처럼 예약없이 불쑥 찾아오는 손님도 맞아주는 이런 곳은 더더욱 그렇다. 손님을 붙들고 오만세월 늘어질 여유가 없으니까 그렇겠지. 빠른 것이 꼭 결과물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나 여태껏 나의 경험상 빨리 잘라도 자신감이 넘치는 터치와, 천천히 잘라도 불안한 눈빛은 손님에게 금방 읽히기 마련이었다.

원장님은 물 스프레이를 한번 샤악샤악 뿌리더니 역시나 거침없이 자르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옆머리를 서슴없이 쳐내더니, 곧이어 양쪽 옆머리를 한번에 들어올려 정수리 위로 그러쥔 머리카락을 툭툭 잘라내는 통에 눈두덩이와 콧잔등과 뺨에 머리카락이 잔뜩 달라붙었다. 날이 꿉꿉한데 걸어오느라 땀이 좀 났던지라 더더욱 찰떡같이 달라붙은 모양새가 마치 머리카락 샤워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희한한 건 이것이 손님 얼굴에 감히 머리카락칠을 하는 잘못된 서비스 같은 느낌이라기보다, 화려한 가위손의 눈발을 맞는 영광스런 기분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십분만 더 넋놓고 있으면 끝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말을 걸었다.

"요새 머리카락이 좀 많이 건조해진 것 같아요"

"네 손님, 안그래도 머리가 상한 것도 아닌데, 너무 수분기가 없는것 같긴 해요. “

"임신해서 그런가봐요. 체질이 좀 변한것 같아요"

"아~ 충분히 그럴수 있죠. 그래도요. 지푸라기도 마른 지푸라기가 좀 부피가 있잖아요. 잘하면 더 볼륨감 있게 보일 수도 있어요"



와 ..!
서비스업에서 이정도 멘트 장착은 해줘야 ㅋㅋㅋㅋ

내 머리가 비록 지푸라기 신세가 되었지만, 이것이 칭찬인지 아닌지 좀 헷갈리긴 하지만, 린스드립보다 훨 기분 좋은 것. 손님 응대할 때 말 한마디가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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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다 됐어요. 마음에 드세요? 손님 전화번호 뒷자리 불러주시면 얼른 적립 해 드릴께요"

"87** 이에요"

"아 여기 나오네요, 윤형*님 이시죠? "

"아.... 저희 친오빤데... 그냥 거기 해주세요"


온가족 같은 미용실 다니는 거 들켰네. 마지막까지 깨알같이 웃겼음 ㅋㅋㅋ 담에 또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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