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urnal & Pic/사진 없는 일상

소개팅 사건

몇주 전 아는 언니의 소개팅을 하나 주선했다. 언니와 오랜만에 점심을 먹으며 근황토크를 하던 중에 올해는 무슨일이 있어도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선뜻 먼저 제안을 했다. 예전에도 남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끼리 생각했던 매칭이긴 한데, 굳이 요청하진 않으니 접어두었던 안이었다. 평소에도 세상 쿨한 언니는 별 조건을 걸지 않았다. 대머리가 아닌 유복하고 유쾌한 남자면 되었다.

남자분은 신랑의 첫 직장동료(형)이었던 분이다. 연락하여 의사를 물었더니 지금은 잠시 일을 쉬는 중이라 했는데 소개팅 시켜주기엔 좀 애매한가 싶어 언니에게도 물어보니 괜찮다 하여 진행했다. 나이가 비슷한 것만으로도 언니는 맘에 들어했고, 만나기 전 주고받는 말이 느낌도 좋다며 좋아했다.

만나는 날 연락이 왔었다. 자리가 한창일 때 연락이 왔는데 본인과 너무 잘 맞고 맘에 든다며 그때부터 학교부터 집안까지 질문 폭격이 시작되었다. 사실 난 그 남자분은 잘 모르는 분이라 남편을 통해 물었는데 그도 정보력에 한계가 있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실시간 중계를 해주었는데 살짝 당황했지만 여하간 마음에 든다니, 좋은 시간 보냈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그 다음 날이 되었다. 언니가 남자분의 예전 직장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분(아마 높은분)께 재직중 어떠했는지, 사람에 대해 물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음.. 언니는 나에게 그 내용을 공유했다. 언니는 본인은 만났을 때 좋은 느낌이었는데, 아는 분이 조금은 부정적이라고 하여 고민한다고 했다. 그분이 반대하는데 어떻게 하지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걸 듣는 것 자체가 당황스러웠다.

무언가 성공적으로 잘 되지 않으면 중재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싶다. 소개팅을 주선하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던 이유도 이런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사람일은 어찌될 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과 계약(보험,이사,결혼 등 모든 일의 각종 서비스)을 하는 모든 일이 나는 대부분 불편했다. 차라리 모르는 루트로 계약을 하면 잘못되었을 때 문제제기를 할 수 있으니. 그렇지만 소개팅이란건 특징상 이런 공적인 계약과는 다르게, 주선자의 적극적 의지와 스피드가 없으면 기회 자체가 잘 주어지지 않는 것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선뜻 나서서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쨌건 결론이 애매해졌으니, 그래서 일단 마음이 찜찜했다.

두번째, (이게 사실상 이상함을 느낀 주 원인이다) 사람을 보는 것은 결국 자기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평판 체크를 남에게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나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간 나는 사람 만나는데 부모님을 포함한 가까운 이의 반대를 겪어보지 않아서 이렇게 태평한 생각을 하는 건가?

나는 결혼을 하기까지 연애에 약 10년을 들였는데, 8년쯤 지났을 때 남편이 나에게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냐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닌것 같다'는 결론을 말한 적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나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평소에도 결정장애인데) 인생에 가장 신중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10년으로도 부족했던 것 같다. 10년이 지나도 모르겠다고 투덜대는 내게 친구가 '언니는 이번사람과 결혼 안하면 다음번엔 45살에 결혼하겠네요'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몇년을 더 두고 지켜봤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을 두고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은 일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주관적인 평가라서 참고는 할 수 있지만 결국 판단은 본인의 몫은 아닌가. 더욱이나 윗사람이 느끼는 것, 애인이 느끼는 것은 많이들 다를 것이다. 내가 중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는것이 결국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다른 데서 체크한 부정적인 평판을 굳이 주선자에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건 솔직함이라기보다 짐 덜기 즉, 감정적 전이(털기)가 아닌가 그런 기분이 먼저 들었다. 이후 예상가능한 언니의 감정을 차차 생각해보았는데, 언니의 의도는 중재가가 곤란한 상황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중재자로서가 아닌 친구로서 어쩌는게 좋겠니 라고 말하는 뜻이었을까. 난 당황해서 후자는 생각지도 못했네. 친구의 입장을 헤아리는 데 있어서 난 역시 내가 먼저, 친구가 그 다음인 이기적인 사람인 걸까. 뭔가 마음이 복잡미묘해지는 일이다.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