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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문장수집가

고급쾌락

벤담의 공리주의가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사적 판단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취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그것의 도덕적 가치를 심판하지 않는다. 모든 취향은 동등하게 계산된다. 벤담은 이 쾌락이 저 쾌락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어떤이는 발레를 좋아하고, 어떤이는 볼링을 좋아한다. 어떤 이는 플라톤을 읽고,어떤 이는 '펜트 하우스'지를 본다. 벤담은 물을 것이다. 과연 누가 이 쾌락이 저 쾌락보다 더 고급이라거나, 더 가치있다거나, 더 고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밀은 이런 반박에서 공리주의를 구하려 한다. 그는 벤담과 달리 욕구의 양이나 강도만이 아니라 질을 평가해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밀은 가장 뛰어난 사람도 '더러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고급 쾌락을 제쳐두고 저급 쾌락을 택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누구나 가끔은 소파에서 빈둥거리고 싶은 충동에 굴복하기 마련이다. 밀은 이 점을 지적하며 유명한 말을 남긴다. '만족하는 돼지보다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만족하지 못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

인간의 고급능력을 신뢰하는 이 표현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밀은 이 말에 기대면서, 공리주의 전제에서 벗어나고 만다. 더이상 욕구는 무엇이 고상하고 저급한지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못된다. 이제 그 기준은 우리의 바람과 욕구와는 별개인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이상에서 나온다. 어떤 쾌락이 고급인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고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햄릿'을 위대한 예술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그보다 못한 오락거리보다 '햄릿'을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고급능력을 끌어내고 더 인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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