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이 책은 터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참고할 게 있을까 고르다가 집어든 책이다. 실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이 다분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을 얻었다. 오랜만에 마음 따뜻하게 읽은 책.
작가 오소희씨는 3살짜리 아이의 엄마인데, 그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닥치는 여러가지 상황이 펼쳐진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들. 버스에서 자지러지게 운다던지, 떼를 쓰고 주저앉는 바람에 그날의 일정을 포기한다던지.. 하지만, 그럴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또 새롭게 느끼는 부분들. 그것이 적지 않더라.
아이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 분이 하는 이야기의 상당부분을 공감하는데 있어서 나와의 교집합이 적은게 아쉬울 정도로. 멋진 엄마였고 닮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이가 있는 언니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불편해서 어떻게 3살 아이와 함께 다닐 수 있냐 질문에 아이의 엄마는 '제가 좀 효율적이지 않아요. '라고 했다. 효율적이라는 건 합리적이라는 말과 함께 어느새 진리처럼 쓰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상대성이 껴들 여지가 없는 부분 말이다. 내가 그동안 좇아왔던 효율과 합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들었다. 엄마가 되어 아이와 살다보면 효율을 포기해야겠지. 내가 그동안 너무 모든 사람들에게 '효율' 을 요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 뜨끔했다.
* 나는 여행이라는 스승을 통해, 삶에 대해 더 낮아질 것을 배운다. 엎드려 고개를 숙이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것이다. 지독하게 여행이 떠나고 싶어할 때는 언제나 더 이상 내가 나를 낮추고 있지 않을 때였고, 스스로 그 직립이 피로할 때였고, 피로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 무엇을 아끼는가. 살아서 다하지 못하고 아껴두는 것. 유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은 내가 나에게 하는 반성이기도 하다. 안전하게 안락하게, ,게으르게, 주어진 생을 덜 살고 있는 내 자신..
여행기를 쓰면 쓸수록 그 스킬에 대한 욕구도 늘어난다. 내 마음을 플랫하게 옮겨놓는 능력.
그리고 쓰면 쓸수록 다른 이의 여행이 궁금하다.
무엇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어떤 호흡으로 발걸음을 옮기는지.
"떠나라. 느끼는 것은 자기것이다." 따위의 추상적인 말보다 좀 더 구체적인, 내가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참 보고 싶었던, 잘 쓰여진 여행기를 읽고있는 기분이었다. 여행(롤)모델처럼. 작가는 여행을 떠나서 무엇을 채우고 오려고 하는지 그 마음을 잘 녹여낸 책이다.
역시 그중에서도 반한게 있다면 단연 그 따뜻한 인성.
그리고 조바심 내지 않는 엄마의 마음.
넘쳐나는 여행 에세이를 잘쓰여진 블로그수준으로 치부하며 폄하해왔던 내 겸손치 않은 모습이, 이 엄마의 무겁지 않지만 섬세한 통찰로 인하여 녹아내렸다.
역시 자유롭다는 건 어떤 상황에 얽매여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아이를 데리고 외국 배낭여행을 떠난다' 라는 정도 될듯. 세살박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든 엄마가 해외로 여행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어떤 객관적 상황이 할수 있게 혹은 없게 하는 게 아니라, 할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지닌 자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일부 몇년간은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되면 여건이 되면 바로 원하는 일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내재된 힘 덕분이다.
늘 보고 싶었던, 따뜻하고 감칠나는 여행기를 읽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내 옆에 있는 사람처럼 이 작가언니가 내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동네에 이런 언니가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