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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Russia

상뜨: 러시아정교 성당과 에르미따쥐 그리고 넵스키


상트 여행은 새벽부터 시작했다.
기차역에 떨어진 것이 새벽 6시 40분쯤이었나.
기차역 근처 작은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상트에서는 재덕대리님의 친구분이 가이드를 해주기로 해서, 그분이 새벽부터 우리를 마중나와 계셨는데
모스크바에서 말 안통해 어리버리하게 돌아다닌 걸 생각하면 참으로 풍성한 여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커피 하우스에서 현지인처럼 간단한 요기를 하고 넵스키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넵스키대로는 네바강의 거리라는 뜻으로
길이만 4Km, 최대너비 60m에 달하는, 말 그대로 대로(大路)이다. 처음 들어서면 그 위용에 압도당할 정도.
길 양쪽으로는 수많은 공연장과 까페, 러시아 정교의 성당, 제정 러시아 시대의 운치있는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다.

상쾌한 새벽공기와 함께 에르미따쥐까지 걷는 넵스키도로는 고요한 가운데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사진은 쨍한 낮보다, 어스름한 아침과 저녁빛이 훨씬 더 낭만적이라 하지 않는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해가 눈부시게 떠오르던 넵스키의 느낌은 순간적이었지만 참으로 인상깊었다.

▲ 여기는 러시아 박물관 앞의 푸쉬킨 동상이 있는 광장이다. 
위대한 시인 푸쉬킨은 러시안들에게 매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듯, 어딜가도 푸쉬킨의 이름이 빠지는 곳이 없다.


▼ 한편 기차여행 후 새벽부터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상트 첫날을 보내게 된 우리는 당당한 푸쉬킨의 자태와는 비교될 정도로 초라한 자태. 둘의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가이드님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하느라 힘들었다.


넵스키 도로를 걷다보면 총 세개의 운하(와 그 위를 지나는 다리)를 만난다.

▼ 그 중 두번째인 그리바예도바 운하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 부활성당. 알렉산드르 황제 시해사건 현장에 세워졌다고 하여 '피의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하고 상당히 흡사한 모양인데, 더 오랜된 것은 성바실리이지만, 테트리스 게임 개발자는 상트 출신이란 말도 있다고 하고 ㅋ

 


▼ 까잔 성당
좌우로 날개를 펴고 모두를 품어줄 것 같은 모습의 까잔 성당은 척 봐도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과 닮았다.
이탈리아 건축가가 설계하였으며, 다만 러시아정교 양식을 따랐기 때문에 전통에 따라 제단과 출입구는 동쪽으로 향해있다.

까잔은 넵스키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한편에 갑자기 두둥 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느낌이다.
명동의 휘황찬란한 네온싸인에 휩싸여 걷던 외국인이 갑자기 남대문 같은 몇백년전 느낌을 주는 건물을 만났을 때 느끼는 위화감, 뭐 그런 기분?

애니웨이, 신구의 조화는 아름다웠으며,
까잔성당은 맑은 아침 빛에도, 그리고 저물어가는 넵스키의 낭만에도 한몫 톡톡히 하는 정신적, 심미적 지주 같은 존재였다.




▲ 특별출연: 밤의 까잔

그리고 드디어 에르미따쥐!


▲ 일단 에르미따쥐 앞의 궁전광장에서 한장.
그냥 우리는 에르마따쥐 전체비주얼과 광장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고.
저 아래쪽 어둠의 자식들은 그냥 인증샷일 뿐이고.

하지만 아름다운 이곳은 불과 100여년전 시위대 시민들을 총으로 말살하여 피가 흩뿌려진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진 무서운 광장이기도 하다.



▲ 상트도 가을이다. 러시아의 가을가을가을! 꺅
어떻게 건물에 저렇게 파스텔 톤의 색깔을 입힐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나라면 당연히 안 질리는 색깔을 고른답시고 흰색 내지는 원색을 골랐을 것이다. 신기했음.

에르미따쥐는 파리의 루브르,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이다.
작품은 총 250만여점.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는 곳은 주로 겨울궁전인데 로코코,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이 극을 향해 치닫는 궁전이다.


한면이 모두 왕족의 초상화로 가득차 있던 벽면.
군데군데 비워진 곳의 주인들은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했거나 요절하여 채워넣을 수 없었던 분들.

가끔 영화같은 데서 오랜 가문의 실물싸이즈 초상화들을 마주한 주인공들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선을 캐치하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에르미따쉬에서 이 초상화들을 보고 나니 왠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더라.
이상하게도 눈빛에 매료되고, 기분이 이상하게 둥둥 거리던 그런 색다른 경험.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쉽게 안 나오는 비주얼' 배경이시다. 요런 배경엔 누굴 갖다놔도 이쁘거등. 하하


▼에르미따쥐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공간. 라파엘로 화랑이다.
라파엘로와 라파엘로 제자들의 작품으로 전체 화랑을 뒤덮은 공간.

한면으로는 빛이 들어오고, 그 빛을 받으며 올려다 본 그림들은 마치 올록볼록한 조각처럼 섬세한 모습으로 화답한다.  '벽지'의 시초가 되었다는 라파엘로 화랑, 멋졌다.


▼ 에르미따쥐의 절정, 마티스의 작품. '음악'과 '춤'이다.


'음악' 작품 맞은 편에는 여자분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도는 '춤'이 있다. 바로  요 녀석 ▼

'아침 빛이 새어들어오는 고요한 숲속의 양치는 그림'이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이미지 못 찾았음 OTL)
대부분 에르미따쥐에서는 마티스의 작품을 볼만한 작품 일순위로 꼽더라. 나에겐 현대미술은 안 와닿아서 그런지, 마티스의'춤'과 램브란트의 '탕자'의 감동은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에르마따쥐 박물관은 상트의 메인, 그것도 부동의 메인이다.
하지만 나는 이날 체력도 최악, 위생상태(?)도 최악이어서 편안할 수만은 없었다. 야간기차침대의 여파인지 오랜 시간동안 걷는 일정을 소화하기에 난 허리가 너무 아팠고, 투어객 두명에 한명의 가이드가 있는 상황에서 나 혼자 단독행동을 할 수도 없었다.
패키지 여행을 해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가이드분의 이렇게나 자세한 설명도 처음이었는데
풍부하고 깊이 있는 여행을 만들어주려 애쓴 그 분에게도, 그리고 함께하는 다영이에게도 여러모로 미안한 상황.
다음에는 이런 미안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체력을 길러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삭성당 전망대


"오늘은 날씨가 진짜 끝내주네요. 러시아에서 이런 날은 한달에 한두번 만나기도 힘들어요. 날씨도 끝내주는데 오늘 같은 날은 전망대 올라가도 잘 보이겠다"

성 이삭성당에서 입장권을 끊으려고 기다리다가 날씨가 하두 좋아서 가볍게 던졌다는 가이드님의 말을 냉큼 받아 기어이 올라간 이삭성당 전망대. 하지만 그 전망대가 걸어올라가는 건줄 미리 알았더라면, 한번은 생각해 봤을텐데.


계단에 표시되어 있는 숫자는 10개계단마다 하나씩 올라가는데, 내 기억으로는 200정도까지 올라갔더랬다. 
2000개의 계단정도 올라간 셈.

야경전망대도 잘 안올라가는 내가. 낮 전망대를 다! 그것도 걸어서!!




하지만, 아니갔으면 후회했을 거야. 너무 좋았거든. 셋다 아주 업되서 그냥!!!
미친듯한 바람에 날아갈듯 기둥에 붙어 서있으면서도
다영이 말대로. 진짜 신나면 장땡. 유후!!




다시 2000여개의 계단을 걸어 내려와서 들어온 이삭성당의 내부.
색채에 밝은 다영이가 '핑크빛' 돌에 매료된 이쁜 성당이다.
보통 녹색빛에 성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다른 성당들에 비해서 따뜻하고 밝은 느낌이며 모자이크 벽화와 스테인드 글라스가 매우 예쁘다.


가이드분과 함께하는 상트 여행은 허투루 낭비하는 시간 없이 매우 알차게 꽉짜여진 일정이었다.
우리를 위해 오케스트라 공연 하나와 발레 한 편을 예매해주시고,
이날은 이삭성당을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 공연전까지 숨가쁜 여정을 마무리 지었다.

상트는 참 볼게 많쿠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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