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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Culture

영화 : 그것만이 내세상

그것만이 내세상 - 영화

 

 

 

1.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월광’ 3악장 진태의 마로니에 공원 공연곡, 영화의 첫곡

워낙 유명한 곡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서 음표 찍어 만든 미디음악으로 많이도 들었던, 너무 익숙하고 정직한 곡. 그렇게 익숙한데도 주제멜로디가 나올 때마다 너무나 반가운데, 피아노의 저음부터 고음까지 몰아쳐오르는 변주가 다섯번째쯤 이르러 스타카토의 공격이 나올 때면 어느새 나도 트릴음을 따라 자연스레 손가락을 움직이게 되는 불가항력적인 곡이다.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는 얼렁뚱땅 뭉개지는 부분이 없고 잠시도 쉴틈을 주지 않아, 몰아치는 감정의 응축과 폭발을 청자에게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외치는 느낌이 든다. 과연 열정과 성실의 음악가답게, 끊임없이 우직하게 이어지는 왼손의 들끓는 반주가 마치 심장의 박동소리 같은 기분.

 

 

2.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 2악장 한가율이 빗속에서 운전할 때 나오는 곡

배경음악같이 어느새 조용히 시작해서는, 환희의 멜로디를 선사하는 아름다운 곡. 영화를 보며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의 주 선율은 관현악기가 차분히 연주하는데, 10여분간 차곡차곡 충분히 고조시킨 격정의 흐름을 견디어 지나면, 재현부의 벅차오르는 환희가 현악기의 선율을 통해, 그리고 심장을 울리는 피아노의 협주와 함께 어우러져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아름다운 천국의 선율이, 여주인공의 끝을 향해 내닫는 복잡한 감정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기에 훌륭하였다.

 

 

3.쇼팽 피아노협주곡 1 3악장 진태가 한가율의 집에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처음 친곡

역시 이 영화를 보며 처음 들은 곡. 귀여운 아이가 장난삼아 시작한 것 같은 경쾌한 멜로디가 상큼하게 이어지다가 이내 깊은 감정의 진폭을 드러내지만 전체적으로 재기발랄함이 곡을 완성하는 느낌. 다 큰 몸이지만 아이의 정서를 가진 진태라서, 그 미묘한 상황에서도 특별한 의도없이 즐거운 곡을 쳤을 것만 같아서, 그 연출가의 선곡이 매우 적절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곡을 치며 흘러가는 감정의 변화를 피아니스트들은 곡마다 얼마만큼 다르게 느끼고 해석하는 건지,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 넘게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을 단순히 메이저와 마이너의 오고감, 악장의 형식적인 해석을 넘어서 어떻게 이어갈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하였다.

 

 

4.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진태의 갈라쇼 공연곡

이 음악을 들으면, 패밀리게임기를 놓고 게임하던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비극적인 도입부에 비해 곧 따뜻한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 같은 마법 같은 곡. 러시아곡에 대한 선입견인지 몰라도, 마치 호두까기 인형처럼, 추운나라의 설원속에 불을밝힌 신비스러운 성 속에 초대된 동화속 주인공과 같은 기분으로, 노래를 듣는 내내 기분이 낭만적이 되는 것은 감출수가 없다.

 

 

의외로 유명한 클래식 곡들로 영화를 채우면서도, 이질감 없이 관객들에게 녹아들 수 있던 건 역시 연기의 힘이 아니었을까. 비록 연주자만큼 연주하지 못하여 대역을 쓸지라도, 훌륭한 배우는 관객으로 하여금 감동을 넘어 영화 속 음악에게까지 인도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가 음악만을 한껏 느끼며 거의 피아노에 얼굴을 박은 채로 몰아치듯 건반을 두드릴 때 나도 같이 심각하였고, 그가 즐거운 환한 얼굴로 환희의 선율을 칠 때, 나도 따라 조금 행복해졌다.

연기로서, 클래식 음악의 감동을 영상너머 관객에게까지 전달할 수 있는 건 뛰어난 능력이다. 음악이 가진 본연의 힘도 있겠지만, 꺼내어 마음껏 펼쳐낸 건 그가 분명하니까.

그의 다음작품도 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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